입사를 했을 시기의 계절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이었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런 따뜻하고 아름다운 바깥 풍경과는 정반대였다.
(회사 창문 밖으로 벚꽃 나무가 보인다.)
첫 주간 회의를 참석할 때가 돼서야 내 포지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빈아_신입인 내가 온라인 담당자라고?
(회의를 하고 있고, 빈아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회사는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줄어들면서 부랴부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그게 자리를 잡기 전이어서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온라인 몰 몇 가지를 소개하는 페이지.)
게다가 소량 생산을 하다 보니 각 상품당 판매가가 비싸게 책정되었고, 그래서 매출이 줄어 다음 시즌의 생산에 또 차질이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주임님_빈아님이라면 이 가격에 이걸 살 것 같아요? 너무 비싸.
빈아_제 기준에서도 많이 비싸긴 해요.
(사수인 주임님과 빈아가 엑셀 화면을 보고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 그 빈 곳을 정부 지원사업 등을 통해 메꾸고 있었는데, 그래서 다들 각자의 업무에 다른 부가적인 일들이 얹어져 버거워하고 있었다.
(빈아에게 쌓인 업무들.)
그런 어려운 상황의 해결책으로 온라인 담당자를 뽑아 여기저기 나눠서 맡았던 업무를 한곳에 집중시키고 발전시키자는 전략을 세웠고, 그렇게 내 포지션이 생긴 것이었다.
빈아_경험이 없는 내가 매출 전략을 세울 수 있을까? 당장 내일 대표님과 회의를 해야 하는데.
(흩어져있던 업무들이 빈아에게 집중된다.)
그 맥락으로 나는 구인 공고에 적혀있지 않았던 10개의 온라인 몰 관리와 택배 포장 및 발송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택배를 포장하고 있는 빈아.)
그래도 그때의 나는 내가 처한 것들보다 내가 가진 것들에 집중했다.
홍보팀 주임님_빈아님, 이제부턴 온라인 광고 업무도 해야 해요.
빈아(생각)_그래도 여긴 생활한복 분야에서 규모가 있는 편이니 내가 배워가는 게 많을 거야. 이것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나를 시키시는 거겠지. 모르는 건 따로 배워서라도 책임을 다하자.
(홍보팀한테도 인수인계를 받는 빈아.)
그렇게, 잘 버틸 수 있을 거란 큰 착각을 하며 신입으로써 최선을 다했다.
빈아_나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창문 너머로 벚꽃을 바라보는 빈아.)
알바만 했던 내게 정규직 입사라는 워딩은 굉장한 성취감을 주었다. 가족들에게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고, 취업을 빨리한 편이라 여기저기서 축하와 격려가 쏟아졌다. 무엇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 모두 내가 한복이라는 분야를 오래도록 좋아했다는 걸 알았기에 잘 어울린다, 너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래서 나도 정말 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내가 입사했던 곳은 본사 직원이 30명 내외인 중소기업이었는데, 전국적으로 3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있는 큰 브랜드였다. 그래서 나는 그곳의 기획 MD가 되었다 했을 때 정말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거라 생각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에 그렇게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입사 당일,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건 열악하게 급조된 내 자리였다. 의자가 없다며 여분으로 남겨둔 나무 의자를 주었고, 전체적으로 공간이 정말 비좁았다. 컴퓨터 뒤로는 정체 모를 물건들이 쌓여있는 책꽂이가 가벽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18년간 함께 했던 강아지를 보내고 이래저래 마음이 뒤숭숭했던 터라 '그 힘든 것도 겪었는데 이런 것쯤이야'라는 생각이 더 컸다. 내 진짜 업무를 듣기 전까진.
나는 구인 공고에 적힌 대로 상품을 기획하고 매출을 분석해 판매 전략을 세우는 업무를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맡은 일 중 극히 일부분이었다. 처음으로 참여했던 주간회의에서 디자인 팀장님 입에서 나온 '이제 온라인 담당자도 뽑혔으니,...'의 그 '온라인 담당자'가 바로 나였다. 회사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수익 그래프가 전년도의 절반, 또 전년도의 절반으로 떨어지길 반복. 그러다 부랴부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담당자가 없어 조금씩 일을 나눠서 했고, 그마저도 자리를 잡기 전이라 바로 매출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오직 코로나 19만은 아니었다. 짧게나마 그곳에 있으면서 느낀 매출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소량 제작에 따른 높은 판매가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또 팔리지 않아 다음 생산에 필요한 비용이 충족되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고, 그 빈 곳을 정부 지원 사업이나 크라우드 펀딩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메꾸느라 다들 본인이 맡은 업무에 여러 일이 더해져 과부하가 와있었다. 무엇보다 생활한복의 수요가 적은 것도 큰 문제였다.
그러한 흐름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바로 온라인 담당자를 채용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온라인 관련 업무를 한 곳에 모아 효율을 높이고 전략을 세워 매출을 높여보자는 맥락에서 그 포지션이 생긴 것이었고, 거기에 어쩌다 경력이라곤 알바밖에 없는 내가 앉게 된 것이다.
나를 당황하게 한 건 그런 회사의 사정을 알게 된 것뿐만이 아니었다. 기획 MD 업무에 온라인 업무까지 더해졌는데 거기에 택배 포장 및 발송 업무까지 해야했다. 회사는 자사몰을 제외한 10개의 오픈몰에 상품을 업로드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매일 들어가서 주문을 확인해야 하는 곳도 10개였다. 기획팀 소속인데 관련 인수인계보다 영업팀 인수인계를 더 많이 받았다.
'그래도 3년은 버터야 한다던데, 아니 적어도 1년은 버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버티길 한 달 여가 지났을 무렵, 나는 스스로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분야이니, 사수님이 좋으니, 부족하기에 오히려 하면서 배우는 게 있을 테니, 상황이 열악해도 신입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