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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y 24. 2024

퇴사해도 괜찮아

6.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_ (4-3) 그저 살아있고 싶어서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4/05/24 업로드


6-(4-3) 퇴사해도 괜찮아 _ 그저 살아있고 싶어서


내가 첫 회사를 3개월 만에 그만둔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빈아_정말 들어가기 싫다. 오늘도 좀 돌다가 들어가자.

(츨근길. 회사 주위를 빙빙 도는 빈아.)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위층 영업팀 차장님의 존재와 트라우마,

(영업팀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빈아.)


어려운 상황과 비례했던 회사 내부 분위기, 최저 시급도 안 되는 월급,

(월급이 들어왔다는 알림을 보고 현실을 자각하는 빈아.)


제로에 가까웠던 내면의 회복 탄력성, 충분치 않았던 애도의 시간,

(어려운 상황들이 닥칠 때마다 계속 무너지기만 하는 빈아. 그리고 강아지가 그리워 매일 밤 울며 잠드는 빈아.)


퇴사해도 괜찮은 나이이자 시기라는 판단,

빈아_나 아직 너무 젊어. 괜찮아.

(만 24살이었던 빈아.)


나를 그곳에서 꺼내주고 싶었던 마음, 그래서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

빈아_나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반짝였었는데.

(거울을 보며 자각하는 빈아.)


분명한 건, 거기서 겪은 것들이 지금의 내게 선명히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퇴사 당일, 회사 건물 밖을 나오는 빈아.)


그렇게 깊은 우울을 경험했기에 내 앞에 선택의 기로가 놓였을 때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눈이 생겼고

(건물을 올려다보는 빈아.)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겪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 빈아를 바라보는 현재의 빈아.)


 그곳은 본사 직원이 30명 내외였던 중소기업이었다. 나는 본사 건물 2층에서 근무했는데, 바로 위층엔 총 세 분으로 구성된 영업팀이 있었고, 그중 나와 온라인 업무 관련으로 계속 소통했던 차장님이 한분 있었다. 아, 소통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못했다.


 차장님은 온라인 몰의 전반적인 관리를 도맡아 하고 계셨는데, 오전마다 주문서를 확인해 본사에서 상품을 발송하는 업무를 내게 인수인계하셨다. 그분이 처음부터 강조한 건 어떤 일을 처리할 때마다 전화로 먼저 예고하고 올라와서 직접 보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2층에서 주로 전화로 그분과 소통하며 차근차근 업무를 익혔고, 그 과정에서 몇 번 실수를 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매일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업무가 어느 정도 손에 익었을 무렵, 영업팀은 신입에게 전혀 너그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행하는 모든 일에 간섭이 들어왔고, 심지어 몰라서 물어보고 처리했던 일에도 그게 아니라며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나는 작은 일에도 너무 크게 자책하게 되었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한 명의 일원이고 싶었지만 내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크게 혼난 날엔 거기서 빠져나와 다른 업무를 처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회복 탄력성이 전혀 없는 나약한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제는 그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나 역시 혼나는 걸 두려워해서 내 판단하에 처리한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에 결국 맞아야 할 매를 맞다 보니 작은 회초리에도 큰 곤장을 맞은 것 같은 타격감을 느꼈다. 반려견을 하늘로 보낸 극도의 슬픔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상처에 대한 강인하고 현명한 치료 능력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에게 너그러움을 바란 건 아니었다.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에게 그렇게까지 말할 것들이 아니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굳이 그렇게 칼날을 세워 내게 들이밀지 않아도 됐다. 그들은 오랜 근무 기간을 앞세운 고인 물이었다. 아주 깊이 고여있는 사람들이었다. 2층 사람들이 모두 3층을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대표님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했던 그들이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 했는지를. 그걸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그들에게 말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이미 고여있는 그들에게 판매 상품을 결정하는 권력까지 쥐어준 게 회사라는 것을.


 여러 번 비슷한 상황을 겪고 나니 내겐 그분들, 회사, 회사가 속한 동네까지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다. 매일 아침 일부러 역에 일찍 도착해 회사 주위를 빙빙 돌았다. '오늘은 또 어떤 욕을 먹을까, 어제 나는 왜 그랬을까, 그분들은 절대 회사를 나가지 않겠지,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거야, 나는 이걸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여기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해.... 우리 강아지가 너무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슬퍼. 기운이 하나도 없어. 행복하지 않아.' 그렇게 속에 있는 우울한 감정들을 한 걸음에 하나씩 버리며 기쁨도 우울도, 아무것도 없는 무감정의 상태로 회사에 들어갔고, 하루 종일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의 나는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3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이처럼 정말 복합적이었지만, 그중 가장 큰 건 어려운 회사 상황과 비례했던 내부 분위기였다. 최저 시급도 되지 않는 월급에, 야근의 연속, 그마저도 9시가 넘어야만 수당이 나오는 야근이었다. 퇴사할 때까지 정문 지문 인식기엔 내 지문이 등록되지 않아 가장 먼저 출근한 날엔 누가 올 때까지 회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퇴사한 그다음 날이 하필 창립 기념일이었는데, 그곳에 억지로 초대된 나는 어쩌다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에 참여했고 갑작스럽게 들이 부운 탄산에 눈물 콧물 쏟으며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까지 느꼈다. 재직 기간 내내 너무 많이 울다 보니 우는 내게 스스로 지치기까지 했다. 차장님과 비슷한 실루엣의 사람만 봐도 숨이 막힐 정도로 큰 트라우마가 생겼고, 전화 벨소리엔 노이로제가 걸렸다. 그런, 어쩌면 신입이라면 한 번씩 겪을만한 일들을 말 그대로 '겪어낼'만큼의 힘이 내게 없었다. 딸기를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있었고, 거기 있는 스스로를 계속 부정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반짝임과 거리가 먼 내 모습을 매일 마주해야 했던 것이 정말 큰 지옥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가족들이 있는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나, 퇴사해도 괜찮을까?'


 '괜찮아. 너무 힘들면.'

 '힘들면 해도 돼~ 고민하지 말고 질러!'


 그렇게 내 첫 사수였던 기획팀 주임님에게 퇴사를 결정했다고 통보했고, 2주 동안 블로그에 '퇴사 일기'를 쓰며 업무를 포함한 그곳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차근히 정리하고 회사를 나왔다. 중간에 디자인팀으로부터 팀 이동 제안이 들어와서 잠깐 혹하긴 했지만 더 이상 그 건물 주위를 빙빙 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 결정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


 그래도 근무 기간 동안 쌓인 추억들이 꽤 많다. 영업팀한테 혼나고 울고 있는 걸 사수님에게 들킨 적이 있었는데, 사수님이 그 길로 나를 회사 밖 카페로 데리고 나와 '첫 눈물 기념 ' 음료를 선물해 주신 적이 있었다. 그런 따뜻한 분이 내 사수였기에 그마저도 버틸 수 있었다. 살면서 오픈몰 10개를 운영하면서 그 정도의 양을 포장하고 발송하는 걸 언제 해볼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하고, 정부 지원 사업에 기획서를 작성하는 거며, 크라우드 펀딩의 과정에 참여해 배운 것들, 그리고 부족한 실력에도 열심히 준비해서 대표님께 내밀었던 판매 전략들, 내가 냈던 아이디어에 돌아온 양질의 피드백, 사람들과의 협력,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었던 순간들, 작지만 크게 느껴졌던 칭찬들.


 다 지금의 내게 선명히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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