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아의 메모장. 활력을 얻었던 순간들이 적혀 있고, 그 뒤로도 계속 더해질 거라는 걸 표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일하니 마음이 편하다. 가끔씩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찾아오던 불안과 우울은 이 행복에 가려져 저 밑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걸 좋아하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반복에서 오는 권태는 나를 항상 지치게 만들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반복은 곧 내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일하는 곳이 1년 이상 계약 연장이 안 되는 곳이라서 그게 참 안타까울 뿐이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행복이라면 행복인 이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그 기반에서 자유롭게 창작을 해나가기 위해 나는 또다시 지금과 같은 일을 찾아 나설 것이고, 그때의 나 역시 지금처럼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을 더 일상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다. 지칠 때마다 활력을 주는 것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받게 되는 간식은 늘 맛있고 달콤하다. 여기서의 '달콤함'은 맛의 의미를 넘어 그 시간 자체를 아름답게 해주는 효과까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간식을 나눠 먹으며 '오늘 진짜 힘들지 않아요?' 하고 서로 농담 한마디 주고받으며 피식 웃을 때. 어쩔 땐 그 웃음의 힘으로 힘든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가수가 앨범을 내서 출근길에 새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기대하던 영화가 개봉해서 예매해 놓고 기다릴 때, 저녁에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날일 때에도 활력을 얻는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는 내가 그 한주를 살게 했더랬다.
그리고 바쁜 하루의 마무리로 편한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며 술 한잔 기울일 때에도 활력을 얻는다.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술자리에서 오가는 재밌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좋다. 이제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밤새 마시진 못하지만 대학교 신입생 때는 친한 동기들과 자주 새벽까지 놀았던 것 같다. 그 친구들과는 아직도 가깝게 지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수업이 끝나면 갔던 음식점을 이젠 퇴근하고 간달까.
이렇듯 사람들과 함께하며 피로를 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내야 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일상에 힘을 더해준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언가를 하더라도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미뤄뒀던 전시회를 보러 간다던가, 카페에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책을 읽는 것 등 문화생활을 제대로 하기에어쩌면 혼자가 알맞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큰 활력을 주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우리는 엄청난 활력을 얻는다. 그 간질간질한 감정이 다른 근심걱정은 하나도 중요치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냥 좋은 걸 어떡해.'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인간적인 호감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 시간이 즐거운 건 당연하다. 그 당연함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이렇게 나에게 활력을 주는 것들을 틈틈이 메모해 뒀다가 기운과 체력이 가라앉는다 싶으면 꺼내 읽어봐야겠다. 생은 반복의 연속이고, 그 반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활력을 얻는지에 따라 나와 내 주변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