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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Aug 03. 2023

자리가 만들어준 담대함

4. 나의 학생회 역사 _ (3) 학생회장이 되다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8/03 업로드


4-(3) 자리가 만들어준 담대함 _ 학생회장이 되다


3학년이 되고, 나는 학과 학생회장이 되었다.

(신입생을 맞이하는 빈아. 학과 대표로서 학과 설명회를 하고 있다. 강의실에 PPT가 띄워져 있다.)


구성원들이 바라는 학생회장의 모습은 진취적이어야 했고 항상 옳아야 했다.

('담대함'이라는 글자가 써진 가면을 쓰고 있는 빈아.)


그러나 나는 흔히 말하는 마이크 체질이 아니었다.

(가면 / 교수님과 함께 앉아있는 빈아와 학생회. 요구사항을 건의하는 빈아. 불타는 눈동자. 그러나 영혼은 떨고 있다.)


끊임없이 새롭길 바라지만 변화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었다.

(가면 / 빈아가 가운데 서있고, 말풍선들이 빈아를 건드린다. 말풍선에는 '이 부분 좀 바뀌면 좋겠어', '난 이게 좋은데?'가 쓰여 있다.)


굉장히 감성적이면서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힘없이 벽에 기대앉아 있는 빈아의 뒷모습. 가면을 잠시 벗어 손에 들고 있다.)


그리고 신입생 시절 어려웠던 선배들에 대한 기억이 커서 그런 선배가 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무게감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리더였다.

(양 갈래의 길이 있고, 한쪽엔 무서웠던 선배 학생회 언니가, 한쪽엔 빈아가 서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단체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내 일보다 더 열의를 갖고 임했다.

(가면 / 길을 걸어가는 빈아. 힘찬 손동작.)


내 앞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뒤에 서있는 사람들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고

(가면 / 그 길 앞에 안개가 껴있고, 뒤에는 학과 친구들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자리에 서 있으니 그 자리에 맞게 발전했다.

(걸어가는 빈아의 앞모습. 가면을 벗고 나아간다.)


 1학년 과대가 되고 나서 나는 하나의 가면을 제작했다.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담대한 얼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입생 환영 행사에서 부터 학생회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장기자랑이 화두였는데, 동기들과 선배 학생회, 그 자리에 초대된 교수님들 앞에서 그룹별로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1학년 학생회 5명은 당연히 해야 하는, 아니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선배 학생회의 지시에 따라 조를 나눴다.


 그렇게 행사가 다가오고 조별로 연습을 하네 마네 하고 있을 즈음 익명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었다. '장기자랑 강요'라는 강한 워딩의 글들이 쏟아졌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준비해야 한다는 불만들로 시끄러웠다. 나는 함께 일하는 학생회 친구로부터 그 혼란스러운 여론을 접했다. 그리고 학생회 5명이 모여 그 상황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무작정 하지 않겠다고 요구하자니 '익명'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이미 연습에 들어간 팀들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모두의 의견을 모아서 그 근거를 바탕으로 전달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행사가 며칠 안 남은 시점에 장기자랑을 원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투표를 통해 물었고, 과반수가 원치 않는다고 응답했음을 학생회장 선배에게 전달했다. 그때부터 쓰인 가면이 약 3년간 이어졌다.


 선배는 신입생 장기자랑은 서로 친해지자는 명목하에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온 거라 이렇게까지 불만 가득한 반응이 나올 줄 몰랐다며 당황한 듯한 눈치였지만 우리의 뜻을 받아들여주셨다. 강요하고 강제할 의도는 없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신입생 시기를 지나 선배의 위치에 섰을 때, 그때 선배가 했던 말이 잠시 스쳐간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강요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자기도 모르게 이전의 것에 고여 자연스럽게 똑같이 행동했던 게 아니었을까. 사실 선배를 그렇게까지 어려워할 필요도 없었는데 밑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는지, 잘 해내고 싶기 때문이었는지 나는 유독 눈치를 많이 봤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다가가기 어려운 선배보다 편한 언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기획한 것들 역시 누군가에겐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하길 바랐지만 부족함 투성이었던 학생회 생활이었다. 그리고 3, 4학년을 거쳐 졸업을 마친 지금에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학년이 높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학생회장이 되고 더 큰 범위에 소속되면서 학교, 학과와 소통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는데, 그때마다 나의 가면은 서서히 얇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가면을 쓰지 않고도 그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3년간의 활동으로 나의 성향이 바뀌었고, 마이크를 잡은 손과 목소리가 더 이상 떨리지 않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되었다. 그 힘은 스스로 터득한 것도 있었지만 제일 앞에 서서 막막한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든든하게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줬던 학과 선배, 후배,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라는 걸 정신적으로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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