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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Aug 17. 2023

후회했던 순간

4. 나의 학생회 역사 _ (7) 어쩌면 헛수고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8/17 업로드


4-(7) 후회했던 순간 _ 어쩌면 헛수고


학생회를 한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후회했던 순간이 있었다.

(학과장님과 면담을 하고 있는 빈아의 뒷모습.)


학생회장으로서 학교, 학과와 직접적으로 대면했을 때였는데

(빈아 정면.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짓고 있다.)


3년간 부지런히 건의했던 것들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과

(건의사항이 적힌 서류를 바라보는 빈아.)


바뀐 것들마저 주먹구구식의 때우기에 불과했음을 인지했던 순간이다.

(빈아의 얼굴 클로즈업. 실망감 가득한 얼굴.)


그건 우리가 그저 졸업하면 끝인, 요구사항이 많은 유별난 학생들로 여겨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빈아. 동아리 시간임을 표시.)


3년 동안 우린 최선의 진심으로 임했으나 무정한 답변만 반복될 뿐이었다.

(얼굴을 책상에 기대어 엎드리는 빈아.)


걸 직면한 순간 동아리 활동을 하던 강의실 구석에서

(그런 빈아의 뒷모습을 걱정하듯 바라보는 친구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대로 눈물을 흘리는 빈아.)


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허무함이었다.

(페이드 아웃.)


 어떤 일이든 진심을 다할수록 얻는 게 많다. 그러나 그만큼 상처받기도 쉽다. 진심을 다 한다는 건 바라는 게 많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쏟아낸 만큼 원하는 결과로 돌려받길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학생회를 하며 학우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였다. 많은 참여와 관심. 특히나 우리 다음으로 활동하게 될 후배 학생회에게 그래주길 바랐다. 열심히 일하는 걸 알아봐 주지는 않을지언정 변화와 개선을 위해 앞장서 가는 그들의 행보에 작은 참여의 뜻을 전해주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회가 끊임없이 화살을 날렸던 방향은 학교와 학과였다. 총학생회의 움직임에 발맞춰 우리는 적어도 한 학기에 한 번씩 건의사항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 요구들을 항목별로 정리 및 구체적인 개선방안까지 제안하며 그들과 면담했다. 그렇게 얻은 답변들은 다시 우리의 손을 거쳐 학우들에게 전달됐다. 중간다리의 역할을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로 잡고 열심히 임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바뀔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들도 그들의 입장이 있고, 하루아침에 바뀌기 쉽지 않은 요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의 진심 어린 청들이 그저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됐고, 학생회장으로서 마지막 건의사항을 제출하며 학과장님과 면담을 했을 때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돌아오는 답변들에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은 거의 담겨있지 않았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다음에'였다. 다음에 언제? 이미 3년간 바뀌지 않았는데 다음이라고 달라질까, 그걸 믿으라는 걸까.


 그렇게 허탈한 면담을 마치고 얼마 뒤, 졸업작품과 관련된 설명회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동아리 활동차 강의실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학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미 충분히 내용을 공유하고 곧 진행하기로 결정된)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난 3년간 해왔던 일들은 다 뭐였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 말들은 우리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모든 게 헛수고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바뀌지 않을 것에 바뀔 거라는 희망을 갖고 계속 진심을 쏟았구나. 돌아오는 것들에 인정과 사과와 타협이 없는데.


 통화를 마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같이 동아리 하는 선배, 동기, 후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울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허무함이었다. 우리는 그저 어린 학생들, 졸업하면 다시는 보지 않을 존재들이 아니었다. 책임감을 갖고 그 어떤 일보다 학생회의 일에 열정을 다했던 멋진 사람들이었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 개선되어야 할 당연한 것들을 요구했다. 체면을 다 구겨가며 내칠 만큼 그렇게 해주기 어려운 것들이었을까,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어른의 모습을 나는 그렇게 직면했다.


 나름의 자긍심을 갖고 일했기에 실망감도 컸지만 후배 학생회들이 계속해서 싸워줬다. 우리에서 끝났어야 할 숙제들이 다시 아래로 전해지게 돼서 정말 미안했는데, 한편으로 우리의 노력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설명해 주는 듯해서 크게 위로가 됐다. 그렇다. 잠시 허탈해서 후회할지언정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그 믿음만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굳건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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