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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y 04. 2023

내 기억 속 첫 눈물

1. 나는 눈물이 습관인 아이였다 _ (1) 울리지 못한 종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5/04 업로드


1 - (1) 내 기억 속 첫 눈물 _ 울리지 못한 종


유치원 재롱 잔치 날이었다.

(어린 시절의 빈아. 재롱 잔치 현수막이 걸린 무대에 서있다.)


가족들 앞에 계이름 순으로 선 우리들은 음악에 맞춰 종을 울리는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계이름 순으로 종을 들고 서있는 아이들. 어딘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빈아.)


나는 그중 주황색 종인 '레'를 맡았다.

(손에 들고 있는 종 클로즈업.)


음악이 시작되고, 다들 연습한 대로 종을 울리는데

(무대 위에서 울리는 종소리들.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 그러나 멈춰 있는 빈아의 뒷모습.)


나는 종 한번 울려보지 못하고 그만 울고 말았다.

(종을 든 팔을 내리고 펑펑 우는 빈아.)


눈앞에 앉아 있던 엄마, 아빠가 서로 껌을 나눠먹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빈아의 시선. 엄마와 아빠가 껌을 나눠먹고 있다. 관객석이 어두웠음에도 선명하게 보였던 부모님.)


나는 그때 실수할까 봐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늦게 온 데다가 나에게 집중해 주지도 않았던 부모님께 어린 마음에 너무 서운했다.

(공연 전, 무대 뒤에서 관객석을 바라보며 떨고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는 빈아. 더 크게 울고 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면 그 속상한 마음을 속으로 삭이지 못하고 눈물로 풀어버렸다.

(눈물로 흥건해진 배경.)


어쩌면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아, 잘했어. 많이 아쉽겠다.'라는 동정의 말보다 '거기서 울어버리면 어떡해. 너 때문에 공연 다 망쳤잖아.'라고 꾸짖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들려와서 더 크게 눈물이 났던 게 아니었을까.

(재롱 잔치가 끝나고 부모님의 품에 울면서 안기는 빈아.)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눈물은 유치원 재롱 잔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의 내 성향으로 짐작하건대,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음악에 맞춰서 하는 거라면 자신 있어했기 때문에 떨리면서도 설레하면서 공연 날만 기다렸을 것이다.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상적인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 있기에 그 조각들을 연결해서 풀어볼까 한다.


 공연 당일이 되고, 부모님들이 우리의 공연을 보러 유치원에 왔다. 순식간에 관객석이 차고, 무대를 제외한 모든 곳의 불빛이 차단되었다. 그 순간, 무대 뒤쪽에서 바라본 그 어두운 좌석들은 어린 나의 심장을 격하게 뛰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몸이 벌벌 떨리며 불안해졌다. 부모님과 다른 관객들 앞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았고, 준비한 걸 다 못 보여주게 된다면 그 아쉬움 역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작은 손을 열심히 움직여가며 연습에 몰두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우리는 줄 맞춰 무대로 걸어 나갔다. 계이름 순서대로 종을 울리며 연주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각자 도, 레, 미 소리가 나는 종을 하나씩 들었고, 그중 나는 주황색의 종, '레'를 맡아 들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집중해서 시작하려는데, 어두운 관객석 사이로 뒤늦게 도착한 부모님이 보였다. 두 분은 앞에서 셋째 줄 정도에 있던 빈자리에 서둘러 앉으셨다. 그전까지 열심히 찾던 부모님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미소 짓고 있는데, 긴장해서 떨고 있는 나의 눈에 들어온 건 엄마와 아빠가 서로 껌을 나눠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분명 그렇게 나눠 먹고 나서 딸아이의 무대에 집중했을 텐데, 어린 나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 서운해서 눈물을 펑 터뜨리고 말았다. 전주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나는 한껏 끌어올렸던 집중력을 툭 떨어뜨려버렸고, 공연장엔 아름다운 종소리 대신 '으아앙' 우는 한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공연이 끝나고 부모님 품에 안겨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왜 늦었냐고, 얼마나 찾았는지 아냐고, 왜 내 무대에 집중해주지 않았냐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아냐고, 나보다 껌이 더 중요했냐고 따지며 짜증 내지 않았다. 가장 속상한 건 나였기 때문에 그 속상한 마음을 달래느라 털어놓을 힘이 없었다. 어쩌면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그래도 괜찮아, 잘했어. 많이 아쉽겠다.'라는 동정의 말보다 '거기서 울어버리면 어떡해. 너 때문에 공연 다 망쳤잖아.'라고 꾸짖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들려와서 더 크게 눈물이 났던 게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면 그 속상한 마음을 속으로 삭이지 못하고 눈물로 풀어버렸다. 아마 내 친구들 중 몇몇은 나를 울보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철없는 시절은 있지만 나는 그 기억들이 대부분 눈물로 가득 차있다. 버릴 경험은 없다지만 누군가 나에게 지우고 싶은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그 기억들 전부"라고 말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분명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실수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사실 나의 눈물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양을 줄이긴 했어도 없애진 못했다. 감정 해소를 넘어 하나의 수단으로 눈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울고 있을 때 가장 나다웠던 것 같다. 나에게 눈물만큼 솔직한 표현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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