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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y 05. 2023

더 열심히 했다면 틀리지 않았을 문제

1. 나는 눈물이 습관인 아이였다 _ (2) 시험 스트레스 해소 방법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5/05 업로드


1 - (2) 더 열심히 했다면 틀리지 않았을 문제 _ 시험 스트레스 해소 방법


학창 시절 공부 욕심이 많았던 나는 흔히 말하는 '노력파'였다.

(독서실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빈아. 책상 조명이 켜져 있고, 책상 앞에 포스트잇이 몇 장 붙어 있다.)


그 많은 욕심을 채우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공부에 쏟아부어야 했다.

(공부하는 빈아의 뒷모습. 책상 조명에 비친 책의 크기가 빈아를 압도한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어도 그건 딱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라고 여겨졌고, 한 문제라도 틀리는 날엔 더 열심히 했어야지,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시험지를 들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있는 빈아. 시험지엔 92점의 점수가 쓰여있다.)


그 채찍질이 이어지면서 시험 스트레스를 눈물로 풀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엎드려 울고 있는 빈아. 눈물로 바닥이 흥건하다. 그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백야.)


특히, 모르는 문제보다 분명히 봤는데 기억나지 않는 문제들이 있을 때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높게 묶고 시험을 보고 있는 빈아. 교실 배경에 시계가 짹각 짹각 울리고 있고, 교탁에 선생님이 서있다. '이거 분명히 본 건데...' 하며 문제를 못 풀고 있는 빈아.)


이 습관은 중학교 3년 내내 지속됐고, 친구들에게 나는 한 문제 틀려놓고 서럽게 우는,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시험을 망쳐서 우울하게 걸어가는 빈아. 그 뒤로 친구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빈아 시험 망했대?' '아니? 나였으면 엄마한테 바로 자랑할 점수던데...')


그러나 나에게 그건 '고작 한 문제' 틀린 게 아니었다. 그 시험을 위해 노력한 '내 모든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는 것과 맞먹는 것이었다.

(시험지를 들고 울먹이는 빈아. 빈아의 머릿속에 그간 공부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한바탕 울고 나면 격하게 차올랐던 감정이 진정되며 차분히 다음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습관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울고 나서 알 수 없는 상쾌함을 느끼는 빈아.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문제 틀린다고 인생이 무너질 리 없는데, 그저 넘치는 욕심을 감당하려다 보니 조금 버거운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누가 보면 전교 1등인 줄 알았을 거다.

(저 멀리 책 꾸러미를 질질 끌고 가는 빈아의 뒷모습. 그걸 본 친구들이 '공부 잘하려면 저렇게 해야 되나 봐.' '글쎄...?' 하며 대화하고 있다.)


 나에겐 두 살 차이 나는 오빠가 한 명 있다.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다.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걸 넘어 흔히 말하는 '공부 머리'가 있었다. 그런 오빠와 비교했을 때 나는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노력파' 그 자체였다.


 내가 생각했던 '노력'은 뻔한 말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시험 범위의 모든 내용을 외우기 위해 세로로 반씩 접은 A4 용지에 과목별로 요점 정리를 했다. 그다음부터 시험 직전까지 그것만 계속 달고 살았다. 중간중간 문제풀이도 하며 암기한 걸 확인하고, 오답 노트를 만들어 틀린 건 절대, 다시 틀리지 않기 위해 보고 또 봤다. 그래서 독서실에 있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는 건 일상이었다. 그렇게 정리한 것들은 하도 많이 봐서 시험을 볼 때면 그 문제가 몇 페이지 몇 번째 줄에 위치하는 내용인지 딱 떠오를 정도였다.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기도 해서 학습부장으로서 반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몇십 장씩 복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시험 점수에 욕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5학년 2학기 때 나는 전 과목 만점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노력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나니 그다음부터 그걸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과하게 노력하게 되었다. 한 문제 틀렸다고 재수 없게 우는 친구가 꼭 한두 명씩 있는데, 그게 나였다. 중학교 때까지 그랬다. 나에게 그 한 문제는 내가 그 시험을 위해 노력한 모든 시간들이 무의미 해지게 만드는 존재였고, 충분히 열심히 했음에도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미워하게 했다.


 나는 언제나 잘하는 학생이어야 했다. 스스로가 그렇게 정해버렸다. 머리가 나빴기 때문에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놀아야 해'라는 어른들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가끔 놀긴 놀아도 내가 세운 계획은 해치우고 잠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몇 문제 틀린 게 생을 살아가는 데 무슨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 시절엔 그걸 절대 알 수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내 주변엔 열심히 하는 친구들 뿐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기란 쉽지 않았다.


 2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누군가 10대인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어차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하늘을 온전히 보고, 잠도 온전히 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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