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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y 11. 2023

합창 지휘를 맡다

1. 나는 눈물이 습관인 아이였다 _ (3) 한계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5/11 업로드


1 - (3) 합창 지휘를 맡다 _ 한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외부에서 하는 합창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우리 반은 틈 날 때마다 연습에 매진했다.

(합창 대형으로 서있는 반 친구들. 친구들 앞에 선 빈아의 뒷모습. 노래 연습으로 시끌벅쩍한 분위기.)


나는 지휘를 맡아 전체 연습을 총괄했고, 좋은 음감을 살려 소프라노, 알토, 메조의 음을 기억해 각 성부별 연습을 도왔다.

(소프라노 팀과 따로 연습하는 빈아. 빈아의 노래에 맞춰 따라 불러보는 친구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연습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친구들이 보였다.

(빈아의 시선에 걸린 친구 두 명.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망설이는 빈아.)


성공적인 합창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던 나는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어색하고 언짢은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선 분할 / 1) 그 친구 두 명에게 '연습.. 하자'라고 말하는 빈아. / 2) 어색해진 분위기를 느낀 빈아가 한숨을 쉬며 친구들 눈치를 보고 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래해야 하는 것이 합창이기에 나는 말 그대로 우리 반 전체가 합창에 매진했으면 했다. 그러나 내 욕심이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충고로 다가갔고, 나는 상황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울컥 눈물이 나버렸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빈아. 풀이 죽어 땅을 보고 있다.)


하필 합창 연습을 위해 단체로 내 앞에 서 있을 때 말이다.

(다시 합창 대형으로 서있는 반 친구들과 빈아의 뒷모습. 빈아가 우는 모습에 '빈아 왜 울어?', '몰라..'라고 하며 당황해하는 친구들.)


눈물이 나도 연습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와중에 지휘를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고 노래해야 했던 친구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피아노 반주 소리가 들려오고 여전히 눈물을 흘린 채 손으로 지휘를 하는 빈아. 그런 빈아를 바라보며 마지못해 노래하는 친구들.)


며칠 후, 대회를 무사히 마치고 친구들이 모두 수고했다고 다독여줬지만 연습 과정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계속 맴돌 뿐이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는 빈아. '드디어 끝났다!', '수고했어, 빈아야', '우리 잘한 듯' 하고 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빈아는 속으로 속상해하고 있다.)


나는 그저, 든든한 지휘자이고 싶었는데.

(위에서 바라보는 연출. 지휘를 했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빈아. 속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 학급을 대상으로 합창 대회가 열렸고, 우리 반이 최우수 반으로 뽑혀 서울시 대회를 나가게 된 적이 있었다. 밝고 맑은 합창 대회, 이런 비슷한 이름의 대회였다.


 나는 반장이라는 이유로 지휘자로 추천되어 난생처음으로 합창 지휘를 맡게 되었다. (사실, 해보고 싶어서 거절하지도 않았다.) 지휘는 한 팀을 통솔하고 이끈다는 점에서 반장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소프라노부터 알토 음까지 헷갈림도 어려움도 없었기 때문에 음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음감이 연습에 도움이 되면서 큰 성취도 느낄 수 있었다.


 대회가 다가오고, 우리 반은 공부해야 하는 시간들을 쪼개가며 연습에 매진했다. 합창이라는 게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하모니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씩 지쳐가는 친구들이 있었고, 공부가 더 중요했던 시기였기 내가 바라는 만큼의 관심을 쏟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욕심일지언정, 최선을 다해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반이 기회를 얻은 만큼, 그리고 잘하는 만큼 보여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들이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을 대하는 게 어려워졌다. '연습하자'라는 말을 꺼내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그 생각이 결국 '나만 진심인가'로 이어졌고,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합창을 하기 위해 대형에 맞춰 서 있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눈물의 지휘를 하게 되었다.


 사실 서로 다른 30여 명이 모여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는 게 쉬운 일일 리 없다. 그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 시간들을 투자해 가며 집중하고 노력했다. 그 시간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짚어보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의 리더십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앓던 속이 터져버렸다.


 그 와중에 지휘는 해야겠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팔을 휘저었다. 그런 지휘자를 보고 노래를 해야 하는 합창 단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물 때문에 앞이 흐렸지만 그 표정들 하나하나는 선명히 기억난다. 그 친구들의 기억 속에도 내가 울었던 모습이 있겠지.


 나는 그저 든든한 지휘자이고 싶었다. 믿고 갈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상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바람들과 상황들이 충돌하며 해결점이 보이지 않자 습관처럼 또 울어버렸다. 만약 그때 울지 않고 다른 방법을 썼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때 그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어도 다른 해답은 보이지 않았을 것 같다. 울진 않더라도 그저 연습을 이끌 뿐. 내가 그들에게 강요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리더를 할만한 사람은 따로 있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잠시 생각했지만 대학교에 가서도 임원활동은 속했다. 그때의 합창 지휘의 경험은 알게 모르게 나의 '리더 역사'에 조금씩 도움이 되었고, 그 '성장의 맛'이 나에게 감투를 씌워 꽤 오랫동안 마이크를 잡게 했다. 나의 합창 동료였던 친구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부족한 지휘자와 함께 해서 많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며 사과해주고 싶고, 면목이 없긴 하지만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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