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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May 12. 2023

어쩌면 체념

1. 나는 눈물이 습관인 아이였다 _ (4)'글' 친구를 만나다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5/12 업로드


1 - (4) 어쩌면 체념 _ '글' 친구를 만나다


고등학교 때 시험이 더 많아지면서 한동안 내 눈물의 역사는 계속됐다.

(빈아의 독백 / 하교하는 빈아의 옆모습. 언덕길.)


겨우 1년 차이로 중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의 문제들을 풀어야 했고, 사실 너무 버거워서 어느 날엔 심적으로 많이 무너졌다.

(집에 가는 빈아의 뒷모습. 가방이 무거워 보인다.)


하던 대로 열심히 외운다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집에 와서 신발을 벗는 빈아. 피곤한 표정.)


내가 내 점수를 보고 충격을 받는 일이 계속됐다.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좋지 않은 점수였다.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는 날이면 둘둘 감은 휴지 뭉치가 촉촉이 젖을 만큼 더 많이 울었다. 속으로 앓고 있는 것들이 곪을 대로 곪아서 치료가 시급해질 때마다 그걸 온전히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 앞에서 겨우 풀어내며 억지로라도 꿰맬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후 교복을 걸어 놓고 돌아서는 빈아.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


그러다 문득,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치임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하면 되는 것이었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즉, '꾸준함'을 밀고 가면 되는 것이었다.

(의자 밑으로 다리를 넣으며 책상에 앉으려는 빈아. 백야가 노트와 펜을 들고 날아온다.)


어쩌면 1등은 될 수 없다고 체념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의자에 앉아 스탠드를 켜는 빈아.)


다행인지 그렇게 깨닫고 체념하는 과정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쓰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동안 울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덕분에 나에게 글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다가올 수 있었다.

('눈물'의 방을 나와 '글'이라고 써진 문으로 들어가는 빈아.)


나는 정말 슬퍼서 운 게 아니었구나. 울고 난 뒤의 후련함에 중독되면서 눈물이 습관이 되어버렸단 사실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노트를 펼쳐 글을 쓰는 빈아.)


 내가 언제부터 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글만이 내가 온전히 솔직해질 수 있게 했다. 거기서부터 오는 자유로움이 좋았다. 공부도 시험도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 때 내 손으로 꼭 잡은 펜이 이끄는 대로 종이에 끄적이다 보면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내 시간이었다.


 울보였던 내가 예전만큼 울지 않게 된 것도 글이라는 친구를 만난 이후부터였다. 사람마다 마음 깊숙이 있는 감정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나는 그중 눈물의 방을 선택해서 들어갔던 것이고 지금은 '글'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우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하나의 습관처럼 자리하게 되니 바라는 만큼 단단해지기 어려웠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과 상담했던 날이 떠오른다. 시작하기도 전에 눈에서 뚝뚝 떨어졌던 눈물은 두툼한 휴지 뭉치를 적시고도 남았다. 이제 시작인 그 시기에 공부에 벌써부터 지쳐버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 속상하기만 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비는 겨우 한두 방울 맞았는데, 장맛비쏟아지니 그 시험지를 붙들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길게 보고 가자.'는 선생님의 말로 겨우 진정하고 나왔지만 누가 봐도 운 사람처럼 눈이 퉁퉁 부어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털어놓을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는 게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살펴주시는 이상적인 분이었다.


 그러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에게 거는 높은 기대치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봐주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1등이 되기를 포기한 걸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내가 바라는 성적을 얻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체념하게 되었고 예전만큼 습관처럼 울지 않게 되었다. 울 시간에 그 누구보다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 현재, 그렇게 만난 '글' 친구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다 이렇게 저렇게 쓰이며 나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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