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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Jun 01. 2023

나만의 필체

2. 칭찬은 나를 춤추게 했다 _ (1) 일기로 하는 글씨 교정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6/01 업로드


2 - (1) 나만의 필체 _ 일기로 하는 글씨 교정


나는 내 글씨체를 좋아한다.

(글씨를 쓰는 빈아. 펜을 잡은 빈아의 손과 노트 클로즈업.)


적당히 어른스럽고, 손글씨의 느낌이 살아있다. 그리고 여러 줄을 쓸수록 그 단정함이 더 빛을 발한다.

(손글씨 텍스트만 넣어 글씨체에 집중하도록 연출.)


이런 글씨체를 갖게 된 건 온전히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글씨 잘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초등학교 교실. 교탁에 선생님이 서있고 빈아와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선생님을 보고 있다.)


글씨가 줄 사이에 어디쯤 위치해야 하는지, 모음과 자음의 크기는 어때야 하는지 등 섬세하게 지도해 주셨고, 덕분에 악필이었던 우리들은 점점 정갈한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칠판에 글씨를 쓰며 설명하는 선생님.)


선생님은 그 하루로 그치지 않고 매주 일기장으로 글씨 검사를 이어가셨다. 그래서 우리는 일기를 쓸 때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정성스럽게 글씨를 썼고, 다시 일기장을 가져갈 때마다 빨간 펜으로 적힌 선생님의 칭찬을 보며 웃음 지었다.

(일기장에 적힌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 '글씨가 아주 멋지구나!!')


나는 그 칭찬이 좋아서 밤에 일기를 쓸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내 매일 한 페이지씩 가득 채웠다. 정성스럽게 가득 채워진 일기장, 아니 내 글씨들을 볼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엎드려서 일기를 쓰는 빈아. 웃고 있다.)


그 후, 내 글씨체는 많은 시간을 거쳐 더 부드럽게 바뀌었고,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글씨의 변화를 보여주는 연출.)


돌이켜보면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이 글씨를 잘 쓰게 한 것은 물론 '글쓰기' 자체를 즐기도록 해줬던 것 같다.

(누워서 자기가 쓴 글을 보고 있는 빈아.)


그러나 어쩌면 그때부터 스스로를 '칭찬받아야만 하는' 아이로 가두게 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기를 쓰는 초등학생 빈아를 바라보는 현재의 빈아.)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은 담임 선생님을 통해 글씨 교정을 받았다. 글씨인지 낙서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대부분 악필이었던 우리들은 필체랄 게 없었다. 그런 글씨들이 적힌 일기장을 받아 봤던 선생님의 입장에선 고쳐 주어야겠다는 사명감보다 바꿔주고 싶다는 욕망이 더 앞섰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칠판에 굵은 줄 두 개를 긋고 중간에 얇은 점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천천히 글씨를 쓰며 우리에게 설명하셨다. 자음은 어떤 크기로 들어가야 하고 모음은 어떻게 꺾어야 하는지, 그래서 글씨가 두 개의 굵은 줄 안에 어디쯤 위치해야 하는지 등 글씨 잘 쓰는 법을 섬세하면서도 간단하게 알려 주셨다.


 모두가 멋진 필체를 갖고 졸업하기까지 우리는 매주 정성스럽게 쓴 일기장을 제출했다. 선생님은 그 일기장을 통해 글씨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검사하셨고, 잘 쓴 일기는 수업시간에 따로 칭찬도 해주셨다. 특히 일기장 맨 밑에 빨간 펜으로 칭찬 몇 마디씩 꼭 적어주셨는데, 그렇게 칭찬을 받고 나니 계속 잘 쓰고 싶어 졌고, 그래서 일기장에 반듯하고 정갈한 글씨들 가득 채기 시작했다. 오히려 악필로 쓰는 게 어려워질 만큼 그 글씨체가 손에 익게 되었다.


 그렇게 약 1년 동안 약간의 강제성과 자의가 더해져 모두가 악필에서 탈출했다. 이전의 글씨들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초등학생의 글씨로는 믿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멋진 필체를 갖게 되었다.


 그 후, 내 글씨체는 많은 시간을 거쳐 더 부드러워졌고,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진짜 나만의 필체가 생긴 것이다. 손글씨의 느낌에 적당히 어른스러움이 묻어나고 편지처럼 여러 줄을 쓸수록 단정함이 돋보이는, 그래서 주변칭찬하는 고유한 필체. 선생님의 칭찬이 좋았던 그 어린아이는 어떻게 보면 시키는 대로 한 건데, 그걸 실행에 옮긴 건 자기 자신이었음은 분명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마음에 들 필체를 얻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글씨를 잘 쓰게 되면서부터 글 쓰는 게 좋아졌던 것 같다. 귀찮기만 했던 일기가 그저 재밌는 글쓰기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만약에 누군가 평생 감사해야 할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꼭 들어갈 것이다.


 한편, 선생님의 칭찬이 원동력이 되어 좋은 변화가 일어난 건 맞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스스로를 '칭찬받아야만 하는' 아이로 가두게 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깥보다 안에 더 집중하며 못하는 스스로도 보듬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표현하 살아가면서 조금씩이라도 내면을 살피고 있다. '여전히 아이 같지만 그래도 어른'인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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