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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Oct 05. 2023

동아줄과 심장소리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10/05 업로드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배우 신구 선생님이 나오신 적이 있다. 보다가 가슴이 찡했던 장면들이 몇 개 있었는데,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201화 출처 표시 / 유재석과 조세호, 신구 선생님이 나란히 앉아 있다.)


첫 번째는 선생님의 연세와 연기 경력이 언급된 부분이었다. 올해 나이 여든여덟. 연기 경력은 무려 62년이었다.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씩이라도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펜을 놓기엔 너무 조금 달려왔음을 깨달았다.

(미소를 지으시는 신구 선생님.)


두 번째는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마무리 부분이었다. 선생님은 취미도 별로 없이 연극 속에서만 살았다는 게 후회된다고 하시며, 연기는 자기에게 수행의 과정이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시 후회되는 일이 있으세요?'라고 질문하는 유재석.)


'... 오직 연극이 살아가는 동아줄이라 생각하고 이 썩어 있는 건지 끊어질 건지도 모르고 그것만 잡고 평생 지냈으니까. 그런데 그게 끊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매달려서 살고 있으니까, 다행이다 싶고 고맙죠.'

(줄을 잡고 있는 듯 두 손을 움켜쥐고 있는 신구 선생님의 손 클로즈업.)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 미지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인데, 이왕 가야 하는 거 내가 잡고 싶은 줄을 잡고 간다면 그게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가.

(티비를 보고 있는 빈아의 뒷모습. 한 손으로 줄을 잡고 있다.)


세 번째는 지금 몸속에 있는 인공 심박동기의 수명이 8~10년쯤 간다는 얘기를 덤덤히 하셨던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자기의 열정만큼은 끝까지 살아있을 것임을 내비치셨다.

(가슴을 가리키며 말하는 신구 선생님.)


'다음 작품이 얘기될 때마다 내가 이 나이에 이걸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그런 마음이 들 땐 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만 지금 너무 늦었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라는 생각도 들어.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 그러나 하고 싶은 작품을 남겨놓는다는 게... 꺼림칙하지 난.'

(신구 선생님의 앉아있는 모습 전신.)


나는 그 말로부터 오히려 선생님의 심장 박동을 크게 느꼈다. 그 소리가 정말 크게 들렸다. 죽음을 앞두고 있음이 느껴지는 순간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인생이라면 그 생이 과연 유한하다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영원히 뛰고 있을 것 같은 심장을 가지고 계셨다.

(빈아의 앉아 있는 모습 전신. 여전히 줄을 잡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심장이 있기를, 그 심장이 계속 끝까지 뛰기를 바라게 했던 귀한 말들이었다.

(다른 손을 가슴에 올려 심장 소리를 느끼는 빈아. 울컥한 듯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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