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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아 Sep 15. 2023

네 글자 내뱉기

[인스타툰 스크립트]

2023/09/15 업로드


두려움은 어쩌면 평생 가져가야 할 존재가 아닐까요?

(가상 인터뷰_두려움 극복에 대한 빈아의 생각들 / 빈아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에 마이크가 있고 인터뷰어의 뒷모습이 보인다.)


매번 극복해 보려고 애썼는데, 겨우 이겨내도 또 새로운 것이 찾아오더라고요.

(주제를 표현하는 그림 / 먹구름이 낀 듯한 배경. 빈아가 추위에 떨고 있다.)


예전엔 그럴 때마다 글로 풀었던 것 같아요. 진짜 솔직한 목소리로. 그렇게 쓰고 쓰다가 지금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그렇게 쓰는 행위를 포함한 창작 활동에서 느낀 거라는 결론이 나면 잠시 펜을 놓아보기도 했어요.

(팔을 감싸 안은 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빈아.)


보통 여기서 느끼는 두려움은 관심과 연결되는데, 관심을 받기 위한 창작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인 창작은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거든요. 펜을 안 드느니만 못한 결과물이 나올 바엔 차라리 휴식을 취하는 게 나았어요.

(펜과 노트가 올려진 책상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빈아의 뒷모습.)


근데 지금은 스스로 이겨낼 수 없는 정도의 두려움이 찾아오면 그냥 주변에 얘기해 봐요.

(다시 인터뷰 중인 빈아 / 빈아가 답변하고 있다.)


나, 두려워.

(텍스트만 넣어서 강조.)


그러면 그 사람들이 팔을 하나씩 내어줘요. 정말 고맙게도.

(주제를 표현하는 그림 / 타인의 팔들이 추워하는 빈아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각각 다른 색.)


그렇게 모인 팔들로 감싸진 공간에서 잠시 머무르며 온기를 느껴요. 그리고 다시금 깨닫죠. 세상엔 나쁜 사람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걸.

(팔들로 감싸진 공간에서 빈아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있다.)


그렇게 회복하기도 합니다.

(웃고 있는 빈아의 얼굴 클로즈업. 팔들의 색이 빈아에게 입혀진 모습.)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애인과 사별한 은정이가 친구들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얘들아, 나 힘들어. 힘들다고... 안아줘.' 그렇게 하나둘씩 은정이를 안아주고 은정은 그 품에 잠시 기댄다.


 타인은 내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나 역시 타인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사이에서도 속 깊은 얘길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같이 여행을 가거나 서로 고백을 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들이 곪디 곪은 이 속을 다 치유해 주기란 역부족일 것이다. 어떤 감정이든 내 몫이 있고, 그것이 항상 남으니까.


 그러나 굉장히 짧고 간결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 볼 수는 있다. 심각하기는커녕 오히려 건조하고 담백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그런 말투로 말이다.


 '나, 두려워.'


 나는 이 말이 듣는 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느끼게 하는, 일종의 고백 투척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말하는 이가 해결해야 할 몫이 있는 발언임을 상대방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단 네 글자의 말을 내뱉음으로써 얻는 효과는 기대이상으로 크다. 내가 지금 두렵구나, 하고 '아는 것'을 시작으로 그럼 왜 두렵지, 하고 '이유'를 찾게 된다. 그리고 아주 솔직한 이유마주한다.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직시하며 스스로 뻔한 해결책 두 가지를 제시하게 된다. 계속 가거나, 말거나.


 계속 갔을 때와 멈춰 섰을 때, 무엇이 나에게 더 큰 후회로 다가올지는 사실 결정해 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되려 후회가 더 클 걸 알면서도 그쪽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는 결과가 뻔히 보이더라도 하고 싶은 방향을 선택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나를 순리로 이끌어 줄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 내리기까지 수많은 두려움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혼자 이겨내지 못하는 것들은 네 글자 내뱉음으로 풀어 본다. 그렇게 하면 고백이 낳은 타인의 온기들이 나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신기하게도 냉기가 조금 가신다. 그리고 그 안에서 회복하게 된다.


 어쩌면 내 심적 불안을 치료해 줄 병원과 약국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니 가기 싫어도 그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일단 신발부터 신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밖으로 향하는 문을 자연스럽게 열게 되고, 그 환한 곳으로 나를 이동시키게 된다. 그리고 곧 뿌듯한 마음을 안고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각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그러니 신발부터 신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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