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글

2023/07/24_저녁 7시 11분

by 빈아

사랑. 사랑을 하고 있지 않으니, 사랑에 관한 글을 쓸 계기가 없다. 여기에서 사랑은 연인과 할 수 있는 감정 교류를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어쩌면 적나라하게도 사랑을 시작하거나, 뜨겁게 사랑하고 있거나, 그 사랑이 차게 식어 결국 이별하게 될 때 필력이 좋아진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었다면 손에 들고 있는 펜으로 마구 감정을 쏟아내며 개운하게 한 페이지를 채웠겠지. 사랑이란 속에 다 담을 수 없는 복잡하고 불분명한 사건이기에 그렇게 밖으로 내뿜으며 속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런 글이 참 그리운데, 현재의 내 상황과 의지가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지만, 그것으로 채울 수 없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그 빈 곳이 어느 날에는 크게 부풀어 외로움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그게 무섭다고 무작정 사랑을 시작하자니 그걸 또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랑은, 해보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고, 큰 이상에 사로잡혀 작은 것에 휩쓸리는 나약한 나와 어느 정도 타협해야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나처럼 글과 그림으로 살며 좋아하는 걸 좇는 사람을 이해해 줄 이가 나타나길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연인과만 나눌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삶에서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만큼 어쩌면 내 생각보다 내가 사랑이란 것 자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직접적으로 자각하는 순간 홀로 서 있는 다리가 속절없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은 걸까, 사랑이란 감정을 빌리고 싶은 걸까. 사랑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부족한 걸까. 매일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걸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나의 치열한 하루하루를 다정히 바라봐 주길 바란다. 그래야 진짜 있는 것 같을 테니까. 내가 오늘 먹은 것과 만난 사람들과 그 안에서 느낀 것들, 그리고 새벽을 그냥 보내지 못하고 있는 고독까지 모두 진짜가 되려면 나 자신이든 누구든 들어줄 이가 필요하다. 모닝 페이지를 쓸 때도 내 목소리를 좀 들어야 하는데 늘 말하기만 했더랬다. 다시 여유를 찾고 나를 나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놔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네 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