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번째 글

2023/08/22_저녁 7시 8분

by 빈아

만약 엄마와 부모 자식이 아닌 다른 사이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나는 엄마를 사회에서 만난 어른들과 같이 예의 바르게 대했으려나. 지금 적으면서 생각한 건데, 솔직히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말하기 전에 한번 필터를 거르는 정도는 됐겠다.


내 짧은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보통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확실히 서로의 긍정적이고 좋은 면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렇게 믿음과 신뢰가 쌓이게 되고, 서로에게 여린 면들마저 자연스럽게 내보이며 진솔하고 다정해진다. 반대로 잘 안 맞는 사이는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걸 알아차리면서 아 이 사람, 나와 안 맞겠구나 하는 선입견이 자리 잡아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수용하기란 한계가 있음을 알아서 가면을 쓰고 대하게 된다. 안 맞는 것도 오래 보면 적응돼서 다름을 인정하고 괜찮아질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수용하기도 전에 이미 내 말투와 표정에 감정까지 다 실어 보내버렸을 것이다. 그러다 겨우 붙들고 있는 사회적 예의 바름까지 던져 버리는 사건이 일어나면 애초에 가깝지도 않았으면서 한없이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부정적이고 악한 면들을 과감히 드러내기 시작하겠지.


그래서 엄마와 남으로 만났어도 분명 단계를 밟으며 멀어졌을 것이다. 가까울 필요가 없으니 더더욱 걷잡을 수 없었을 테다. 이건 엄마도 동의할 것 같다. 쟤는 뭔데 계속 상처를 주지,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해, 잘 안 맞는 사람이야 라며 뒤에서 욕하지 않았을까. 어느 순간 엄마에게 편견까지 생겨버려서 '분명 이럴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로 내리는 결론이라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데, 내 멋대로 정답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많아져서 문제다. 보통 그 정답은 기대를 다 잃은, 무념무상의 투정이다.


엄마한테도 말했지만, 나는 엄마와 함께할 때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쓰면서도 너무했나 싶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안타깝고 씁쓸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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