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부분 Feb 20. 2023

학교에서 배운 것

<학교>

 나는 초-중-고등-대학교까지 17년간 학교를 다녔다. 내가 지금 서른 살이니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학교라는 사회에 몸담고 지낸 셈이다. 학교를 다니며 손 씻는 법, 젓가락으로 콩 집기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한 문제 푸는 방법, 각종 발표와 졸업 전시까지 방대한 지식을 접하고 겪었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뼛속 깊이 익힌 것은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대체로 나를 줄이고 낮추는 일이었다. 차례대로 줄을 서고, 누군가를 시기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표현을 줄이고, 잘난 체하지 않고, 오지랖을 부리지 않고, 분위기를 읽어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나의 행동을 단속하는 방법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사회의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경험과 과정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런 행동과 생각들은 사람을 튀지 않게 만들었다. 엄마는 선생님을 직업으로 가지기 전부터 튀지 않아야 정을 맞지 않는다고 나를 단속하곤 했다. 그건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튀지 않는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든 눈에 띄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학생 시절이라는 관문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난하게 학생 시절을 넘기고 나면 대충 손을 떠나 성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기간을 잘 넘기기 위한, 일단 정해 놓은 대학 입시라는 짧은 목표를 향해 등을 떠미는 것이 가장 쉽고 당연한 방법일 수 있다.


좋아했던 학교의 방과 후 시간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면서 통통 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내 기억으로 많은 어른들은 그런 학생을 원했다. 조용하고 성적이 뛰어난, 토를 달거나 눈을 치켜뜨지 않는 학생.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많은 어른들-가르치는 것이 결국 직업인 사람들-이 관리하기 쉬운, 성적이라는 기준에서 튀든지. 결국 잣대를 대어 가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쉬운 것이다. 써놓고 보니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나처럼 눈을 도록도록 굴리던 친구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무엇을 시키든 적당히 잘 견디고 해낼 수 있지만 딱히 나서서 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내가 경험한 학교는, 비슷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일정한 값을 넣으면 어느 정도 비슷한 결과값이 나오는 함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나의 경우 그럭저럭 학교를 잘 다니고 졸업을 했다. 깊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빠뜨린 채 학교를 다녔다. 교육을 받는 방식이 학교뿐만은 아니었을 텐데 그 방법밖에는 몰랐다. 옆집이나 윗집에 사는 또래도 학교를 가니까 학교를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누군가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느라고 바빴고, 마주칠 수밖에 없는 나의 세계, 사람들을 만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다시 학교를 가라고 해도 학교에 다녔을 것 같지만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언제건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조금 무난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기분이다. 사회를 돌아가도록 하는 데에는 문제없이,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서른처럼은 뛰어나지도 멋지지도 않은 삼십 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또 학교에 다닌다면 그때에는 아마 그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또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산을 만드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