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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Feb 06. 2023

부산을 만드는 것

<부산>

나에게 부산은 연고도 없거니와 물리적으로도 자주 가기에는 좀 먼 도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기차를 타도 왕복 다섯 시간 하고도 십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일 년에 한 번 가면 자주 가는 것이려나. 그래서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개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사람이 바글거리는 밤의 해변과 어쩐지 여기까지 왔으면 생선을 먹으러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들어가는 횟집, 자갈치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자갈치 시장, 역 앞의 뜨끈한 국밥, 거대한 화물차들과 컨테이너가 쌓인 부두 같은 것들이다. 부산이리고 하면 모두가 한 번쯤 떠올리는 장면들. 부산을 잠깐 들르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에 나도 잠깐 머무르고 돌아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부산에서 특별한 마음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는 게 조금 속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부산은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확실히 서울과 다른 포근함이 있던 날도 있었고, 가로등이 서 있어도 어둡던 새벽, 청명하고 시원한 해안길을 보여 주기도 했다. 


작년에는 유달리 여러 번 부산에 갔다. 퇴사 전 참여했던 공사 중인 프로젝트를 보러, 놀러 가겠다는 오래된 약속을 지키러, 또 애인과 친구들과 함께 연말을 보내러도 갔다. 일 년에 세 번의 부산행이라니, 한 해에 그렇게 부산을 많이 간 것은 처음이었다. 첫 번째 부산은 부산이어서 있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는 데에 설레느라 바빴다. 내가 참여했던 부분은 정말이지 미미했지만 풍경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기 때문에, 지금도 어떤 풍경이 될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서울에서 퇴사를 하고 부산에서 일을 시작한 민딘을 따라 간 부산이었다. 늘 관광객 모드로 코스를 짜다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친구를 따라다니며 매운탕 나오는 물회도 먹고, 가족끼리 간다던 단골집을 가고, 친구의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서 잤다. 대전이 고향인 사람으로 대전을 아주 사랑하지만 부산이 고향인 사람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연말에는 애인과 몇몇 친구들이 모여 신년맞이 부산행 기차를 탔다. 해변 밤하늘에서 카운트다운을 하던 드론들, 끊임없이 맥주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던 엘피 바, 역시 대선, 또 회, 돈이 많아 보이는 절에서 얻어먹은 새해 떡국 같은 것들이 나의 새로운 부산이 되었다. 


 눈 깜짝할 시간에 시내를 가로지르는 택시와 부산역 앞 만두 가게의 갓 튀긴 군만두, 마린 시티의 묘하게 푸른색, 수평선 위로 넘어오는 해, 밀면과 대선 소주와 광안대교 풍경들은 누구나 아는 장면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부산이 아니면 떠올리기 어려운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과 장면과 공기와 냄새가 모여 부산을 만드는 거겠지 생각한다. 올해에는 또 어떤 부산을 가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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