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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May 08. 2023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 하면

<색>

최근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좋아하는 색이 종종 바뀌던 까닭에, 몇 초쯤 곰곰 생각해 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엄밀히 따지면 색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검은색이 가장 좋다. 두 번째는 흰색이다. 모든 색들 중 가장 다른 색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은 즉 고민을 덜 해도 된다는 뜻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그다지 무채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거다. 안 그래도 선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하루를 살아가기 때문에, 적어도 나의 주변에는 그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쉬운 색을 두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을 잘 쓰는 사람의 눈으로 살고 싶다. 편안하거나 감각적으로 색과 질감과 형태를 다루고 싶다. 담아낸 요리 위에 쪽파나 치즈를 조금 갈아 파랗고 노랗고 흰색을 올리는 것이 훨씬 기분 좋게 완성되어 보이는 것처럼, 세심하게 주변의 색을 들여다보고 내 색을 찾아가다 보면 세상을 조금 더 풍부하게 살 수 있을 거다. 보면 볼수록 이 색이 맞는지, 저 색이 맞는지 헷갈리고 길을 잃기도 하겠지만 이 색 저 색 얹고 섞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곳저곳 찰떡인 색을 얹어 가며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하고많은 색 중에서 몇 가지 색깔을 골라 조화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자연이 만든 색은 어디를 보나 편안하다. 지층의 색, 새의 깃털, 석양이 지는 수평선 위 하늘, 사막 모래언덕의 그림자, 암초와 파도, 하다못해 길거리에 떨어진 나뭇잎 앞뒷면까지도, 보색이든 유사색이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런 까닭에 과제를 하다 색 조합 고민이 길어지면 찍어 놨던 풍경 사진을 뒤져 스포이드로 색을 추출해 쓰곤 했더란다. 익숙하여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색의 조화는 본능과 가까운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질감과 색은 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좋은 것은 더 좋아 보이게, 나쁜 것은 더 나쁘게 보이도록 한다. 그래서 건물에 들어가는 재료를 고르는 일은 즐겁기도 하지만 늘 괴롭고 조마조마하다. 늘 색과 질감과 형태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넓은 면적으로 보면 어떻게 보일지, 매지와 면의 색이 적절한지, 이전에 시도한 적이 없는 것은 알 방도가 없다. 햇빛 아래 반사되면, 흐린 날에는, 밤에는.. 정확한 색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날씨에 따라, 재료의 배합에 따라, 시공자에 따라 달라질 콘크리트의 색은 더 그렇다. 커다란 크기의 목업을 만들고 그에 모든 컨디션을 맞춘다든지 하는 웬만큼의 노력이 아니면,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겨울에는 새로 단장할 근생 벽돌의 색을 골랐다. 오래오래 바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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