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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Aug 07. 2018

우리는 주로 잊기 때문에 잃어버린다

잃어버리다

살면서 두 번 정도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첫 번째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나는 비가 폭포수처럼 내리는 하늘과 흠뻑 젖어가는 신발만 생각하며 걸었고, 휴대폰은 카페에서 학교로 가는 도중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는 어느 이른 새벽, 바르셀로나의 지하철 역에서였다. 잠시 졸며 속세를 떠나 있는 동안 휴대폰은 또 한 번 사라졌다. 내가 기억하지 않는 시간 동안 그것들은 왜 저를 잊었냐며 그렇게 나를 떠났다.


이렇듯 잃어버리는 것은 잊는 것과 동일한 맥락을 공유하는데, 누군가가 도적질해 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주로 잊기 때문에 잃어버린다. 그렇지만 반대로 잃어버린 것들은 잘 잊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잃어버린 것들 중에서도 그 친밀도가 클수록 더 강렬하게 잊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더 빈번하게 잃어버리는 물건들이 있을지라도 핸드폰이나 지갑을 잃어버린 기억은 가장 흔한(?) 잃음의 기억이다.


잃어버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술을 마시면 잊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잃어버리기도 쉬워진다. 술을 마시고 뭔가를 잊고 잃어버린 다음 날의 나는 슬프고, 머리를 쥐어뜯고,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구석에서 끙끙댄다. 분명 술을 마실 때에는 행복했는데, 그것은 그 순간의 사실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간들마저 몽땅 분노와 후회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결국 며칠이 지나면 그 괴로움을 잊고 다시 술을 마시는 나를 발견한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다. 잃기 전에, 잊기 전에 잘 해야지. 그렇지만 나는 또 잊고 잃고 괴로워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이 휴대폰이나 지갑처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것일 때 나는 오래도록 괴로울 테니까, 있을 때 잘 하자.

아, 또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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