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Aug 07. 2018

여행을 떠났다고 여기기로 했다

잃어버리다

이제는 날 떠난 물건이든, 사람이든 여행을 떠났다고 여기기로 했다

얼마 전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지갑이 없는 것을 알아채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 안엔 뭐가 들어있지? 어떤 카드가 있었지? 현금은 얼마나 있었지? 그 지갑은 얼마나 썼지? 그 지갑이 가진 가치를 세어보다 자괴감에 휩싸였다. 어디에서 어떻게, 왜 잃어버렸을까. 내가 보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 순간을 찾느라 오전을 그렇게 다 보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때마다 다시는 그것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이별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어린 나에게 엄마는 항상 괜찮다고 했고, 물건은 또 사면된다고 했지만 상실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그것이 물건이 아니고 사람일 때는 더욱 그랬다.


사람도 물건처럼 잃어버린다. 어느 순간인지 확실하지도 않았고, 나는 영문을 모를 때가 많았다. 이별의 주체가 상대방이든, 나든 마찬가지.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는 것이 나는 때로는 억울하고, 대개 이해하기 어려웠다. 관계의 상실 앞에서 언제나 이유를 찾으려 했다. 이유와 문제를 찾아내면 다시는 그런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나는 과거의 순간들을 헤매다 결국 이유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문제였다고 나 자신을 속였다. 하지만 이유와 문제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 수도 있었고, 몇 년이 지나서야 내가 맺었던 관계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관계의 기한이 다 되었을 뿐.


이제는 날 떠난 물건이든, 사람이든 여행을 떠났다고 여기기로 했다. 다시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나긴 여행을 떠나고야 만 것이라고. 단지 내가 한때 마음을 주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지금쯤 날 떠난 것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 돌아와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알기만 해도 좋겠다고 가끔씩 막연히 바라곤 한다.




보통은 인스타그램에서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btng_text


매거진의 이전글 보통의 사람들이 쓰는 보통의 삶에 대한 보통의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