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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Aug 08. 2018

그들에게 괜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괜찮다

그들에게 괜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괜찮을 수 있었다

논술로 대학에 합격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펼쳐 본 스터디 노트에는 꽤 많은 양의 할 것들이 적혀 있었다. 물론 계획을 전부 다 이룬 날은 거의 없던 것 같지만. 노트에는 공부 계획 말고도 자질구레한 일정들, 생일, 그때그때 한 줄씩 썼던 글들이 적혀 있었는데, 문득 '자기 합리화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라고 써 놓았던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정말 스스로 자기 합리화하지 않기를 원해서 그렇게 적어 놓았는지, 아니면 그렇게 써 놓아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후자였던 것 같다.


괜찮다는 말은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나에 대한 합리화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속은 괜찮기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그렇게 해서는 괜찮지 않아. 나는 집을 떠나서 서울에 오는 것을 선택했으니,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는 걸 선택했으니, 형제들보다 더 많이 지원받고 있으니, 뭐라도 이뤄내야만 해. 더 열심히 잘 해야 해. 장학금도 받아야 하고, 건강하기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이어야 해.


그렇게 스스로를 단단히 조이고 나면 적어도 어떻게든 서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도 괜찮았던 내 모습은 꽃신에 익숙해진 발처럼 점점 물러졌고, 어느 순간 조여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게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다.


껍질을 벗고도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히 타인에 의해서였다. 너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라는 말을, 단지 내가 불안해 보여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듣고 나서부터 나는 나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허무하게도 그들에게 괜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괜찮을 수 있었다. 나에게 그런 말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도 모른다고도.


물론 매번 괜찮은 건 아니다. 아직은, 괜찮으면 안 되지 하고 자주 생각한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껍질을 똑똑 두드려 괜찮다 말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리고  괜찮은 사람들이 괜찮지 않을 땐 나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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