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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김수빈

여동생

by 빈부분

부빈과 수빈은 자음 하나만 다를 뿐이지, 아주 닮은 이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 자음이 ㄱㄴㄷㄹㅁ’ㅂㅅ’로 붙어있기까지 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쩐지 부빈이라는 이름은 낯설고 수빈이라는 이름은 내가 아는 사람만 꼽아도 셋이 넘는다.


각자의 수빈들은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부빈 동생 수빈의 이름은 아빠의 이름에서 한 자를 따서 지은 거라고 했다. 엄마는 숩이 뱃속에 있는 줄 모른 채 이런저런 이유로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바이킹을 타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병원을 갔다. 약 때문에 뱃속의 숩이 잘 자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낳지 말자고 말했지만, 아빠는 무조건 낳아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열 달을 채운 아기는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고 아빠 이름 중 ‘빼어날 수’자를 받아 수빈이 되었다.


춤을 추는 아빠와 숩


남을 도와서 빛나라는 뜻의 부빈과 빼어나게 빛나라는 뜻의 수빈. 우리는 비슷한 이름을 받았지만 이목구비의 생김새부터 고집을 부리는 포인트, 입는 옷의 취향까지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숩을 나와 아주 다른 제삼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 욕설을 주고받으며 한바탕 하기도 했지만 가족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한 방을 쓰는, 나와는 전혀 다른 타인을 관찰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것은 퍽 재미있는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서울로 수빈이는 부산으로 대학을 갔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았다. 떨어져 살며 잘 모르는 부분도 훨씬 많아졌다. 어쩌면 공유하는 기억의 양이 좀 더 크다 뿐 가족도 다른 관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관계는 얼마든지 멀어지고 가까워졌다가 끊어지고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의 숩은 나의 가족이자 동거인이다. 으레 가족들이 그렇듯 작고 큰 일들에 고마워하고 심술맞게 굴다가 미안해하고 웃다가 짜증내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같이 사는 동안에는 최대한 언니답게 잘 해줘야지 다짐을 했었는데, 어제는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술을 마시고 변기 커버를 깨놨단다. 이놈의 김수빈.


*숩은 수빈의 줄임말이자 애칭이다. 종종 ‘수비’라고 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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