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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Mar 13. 2019

너는 개미야, 너는 개미야 말하고 있었다

지하철

1

 나는 목도리에 턱을 깊숙히 파묻고 문 옆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 서 있다. 지하철이 어느 역인가에 도착하고, 문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을 마주하고, 찰나의 순간에 그들이 어떤 모양새로 전철을 타나- 기대한다. 그 모양새는 참으로 제각각이다. 오른발이 먼저 들어오는 사람, 왼발이 먼저 들어오는 사람, 똑바로, 대각선으로, 천천히, 뛰어서, 운동화와 부츠, 크고 작은 두 짝의 발이.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나서는 모두의 아침에 대해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선가 눈을 뜨고, 세수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신발을 신었을 것이다. 완벽한 잠을 잤을 수도, 몸이 아팠을 수도, 어떤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누군가가 핸드폰을 보다가 길을 막았을 때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음, 그런 아침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미간의 주름을 풀게 되는 모두의 아침.


2

 한강 위에서 마주친 반대편 열차와 나의 속도를 합하면 두 배, 언어도 형태도 없는 그 속도에 나는 어쩐지 촛불과도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3

 개미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 아빠는 텔레비전에서 곤충이나 동물이 나오는 채널을 골라 보곤 했다. 당시의 나는 채널 선택에 주도권이 없었기 때문에 옆에서 사과나 우적거리며 하이에나의 사냥 습성이라든지 방울뱀에게 집적거리는 몽구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바닥에 내려놓은 카메라 앞을 지나가던 개미 떼를 꼽고 싶다. 작게만 보였던 곤충이 브라운관 화면만큼 크게 보였기 때문이어서가 아니고, 토독거리는 그 발자국 소리 때문이었다. 그 작은 몸으로 중력을 받고 나름의 땅바닥을 밟아 움직이는 소리. 눈을 감고 들으면 수많은 빗방울 떼가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를 다시 마주한 것은 지하철 환승 구간의 계단에서였다. 개미 떼처럼 그들은 다각거리며 한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마지막 단을 딛는 순간에는 뜨거운 물에 풀어진 라면 스프처럼 일사분란하게 흩어졌고 다시 단단한 형태로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그 소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는 개미야, 너는 개미야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개미가 아닌 체 하려고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걷다가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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