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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Mar 06. 2019

잘 가, 조심해서 가

지하철

잘 가, 조심해서 가잘 가, 조심해서 가



우리는 지하철 개찰구에 나란히 섰다. 난 이쪽, 넌 저쪽. 다른 방향이었다. 잘 가. 응, 너도. 조심해서 가. 도착하면 연락하고. 응, 얼른 가. 


언제부턴가 생긴 스크린도어에 바짝 붙어 건너편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너를 본다. 내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휴대폰을 열심히 바라본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 것인지, 언제쯤 지하철이 도착하는지 검색해 보고 있는 것인지. 그러다가 몇 번은 내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어 널 찍었다. 확대한 탓에 화질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리 너머로 너를 찍은 사진을 보며 키득이며 웃었다.  





"여기 어디지?" 


웹툰 혹은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보다 번쩍 고개를 든다. 대개 놓치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주 내려야 할 역을 놓친다. 특히 초행길이면 심하다. 내 친구 빔은 지하철에서 웹툰 좀 그만 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만, 그게 또 쉽지가 않다. 괜찮아. 다시 돌아가면 돼. 


그게 아니라도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곤 하는데, 그건 꼭 약속 시간에 맞춰가기가 빠듯한 상황에만 벌어지는 일이라 속이 터진다. 빨리 걷고 뛰다가 방향을 확인하지 않거나, 순간 헷갈렸거나. 문이 열려있는 지하철을 타고 나도 모르게 이미 탔거나.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 이러다가 한숨을 쉬고는 약속 상대에게 연락을 보낸다. 지하철을 반대로 탔어. 다시 돌아갈게. 미안해. 내가 그렇지, 뭐. 



매일 타는 지하철도 이렇게 낯설다. 실수를 그만 할 법도 하지 않나 싶다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또다시 여긴 어딘가 주위를 살핀다. 언제나 실수는 날 찾아오고,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 그에 수반된다. 여러 밤에 걸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꿈도 지속적으로 꾸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현실에서는 언제나 목적지에 도달하고야 말았다는 것.  





출퇴근길에 서로를 바라볼 간격조차 허용하지 않는 지옥철을 타기도 하지만, 때로는 차분하게 앉거나 벽에 기대고 서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한적한 지하철을 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주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나도 모르게 살핀다. 


휴대폰 LCD 안의 세계에서 게임을 하거나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움)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을 훑으며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받아보기도 한다. 이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멸종한 줄만 알았는데, 요새는 곧잘 E-BOOK으로, 혹은 진짜 종이책을 넘겨보는 사람들도 왕왕 보인다. 


요새는 넷플릭스와 왓챠를 넘나들며 영상을 보고 있는데, 스크린을 사랑하는 나의 친구 노숀이 추천해준 작품들을 다 따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작품을 보는 속도보다 추천 속도가 더 빠르다. 그중 근래 정주행 중인 섹스 앤 더 시티는 2000년도 이전에 제작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2019년에도 골똘히 고민해 볼 만한 여지들을 남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특히 남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





보통은 인스타그램에서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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