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내가 누군지 알게 해준 것은 팔 할이 민아였을런지도 모른다
민아는 나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달랐다.
나는 감정 표현을 쉽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민아는 그때그때의 감정을 표출해야만 하는 성격이다.
나는 시작하면 끝까지 달려야 하는 정주행의 인간이지만, 민아는 흥미가 떨어지면 그만두는 포기*의 달인이다.
나는 논리적인 사고를 하길 즐겼고, 민아는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창의적인 사고에 능했다.
나는 외국어를 듣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는데도, 민아는 언어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나는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것이 편했고, 민아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결정을 좋아했다.
나는 어찌 되든 결과가 잘 나오는 것이 중요했고, 민아는 무엇이든 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중요했다.
나는 강한 승부욕에 언제나 활활 타오르곤 했고, 민아는 승부 자체에 큰 흥미가 없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민아에게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는 손이 커서 비축분을 포함해 선물할 것까지 사버리는 데에 비해, 민아는 딱 필요한 양만큼만 산다.
나는 비유와 냉소에 기댄 농담을 던지지만, 민아는 존재 자체로 웃음을 줘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다.
*여기서 포기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본인과 맞지 않으면 붙잡고 있지 말고 재빨리 포기해야 똑똑한 것임을 난 늦게서야 알게 됐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다.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 지붕 아래 살아도 각자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며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사람들의 예상처럼 크게 충돌했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나와 민아는 서로 원하는 것마저 달라 크게 부딪히지 않았다. 오히려 민아와 나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을 규정짓게 되었다. ‘민아는 이런 때에 이렇게 하네. 나는 아닌데.’ 그렇게 다른 점을 하나하나 깨달으면서. 내가 누군지 알게 해 준 것은 팔 할이 민아였을런지도 모른다.
학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을 다양한 직책과 역할로 만나면서, 난 나와 다른 세계들을 만난다. 부딪히고, 충돌한다. 그럴 때마다 자주 민아를 생각한다. 민아만큼 나와 다른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래서 상대방의 판단과 취향과 성격에 대해 구구절절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게 됐다.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민아가 있어서 조금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동생을 만나버려서, 난 어쩌면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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