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은숙에게는, 지치고 괴로운 순간을 마냥 긍정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버릇이 있었다. 입원을 하면 병원 놀이, 자식들 뒷바라지는 엄마 놀이, 쉽지만은 않은 오십 대의 직장 생활은 선생 놀이란 식이다. 그녀는 보통 그런 단어들과 와- 신난다!라는 말을 엮어 쓰곤 했다. 그리고 나는 은숙이 그럴 때마다 조금씩 짜증이 났다. 도대체 왜 힘들 때 힘들다고 하지 않는지, 고작 그런 단어들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 쉬워지기라도 하는지. 어쩌면, 그렇게 말함으로써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슬펐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하든지 은숙에게 주어지는 놀잇감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면 좋다는 그녀의 말을 꽤 오랫동안 끈질기게 의심했다. 비가 오면 습해지고, 끈적해지고, 불편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우산에 한 손을 내어 주어야 하거나 양말이 쫄딱 젖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너무너무 아플 텐데. 그래서 나는 비가 오면 하루 종일 조바심을 내며 걸어야 하던데. 은숙은 그렇게 귀찮고 힘든 비를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게 또 이상하고 좀 슬펐다. 그래서 기다렸다. 비가 정말 좋은 걸까, 아니면 비 역시 그녀에게 주어진 놀이 같은 걸까. 만약 그녀가 비를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면서도 좋아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마음으로 나는 은숙의 마음을 기다렸다.
은숙은 종종 우리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과일이 먹고 싶니? 오늘 네가 좋아하는 과일이 뭐니?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는 나의 표정 앞에서 그녀는 의외로 끈질기게 답변을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좋은 것이나 싫은 것보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게 많던 나이였기 때문에 바로 생각이 나서 대답을 할 수 있는 날도 있었고, 끝내 우물거리며 답을 하지 못한 날도 있었고, 괜히 엉뚱한 이름을 댄 적도 몇 번 있었다. 은숙은 좋아하는 걸 자꾸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걸 알게 된 사람은 네가 좋아하는 걸 보거나 듣거나 느낄 때마다 너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러면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에게 선물을 주거나 연락을 할 때 고민도 덜 할 테고, 그러면 너도 좋고 그도 좋지 않겠냐고 했다. 우물쭈물하면서도 입에 머금던 과일 이름을 내뱉었던 이유는 내심 그녀의 말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은숙은 꽤 오랫동안 비가 오는 날 와-신난다! 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비가 올 때마다 그녀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창밖에 비가 쏟아지면 그녀가 사는 창에도 비가 내릴까 생각한다. 비가 오기 때문에 소식을 넣기도, 비가 오는 날 연락이 닿으면 비 와서 좋으시겠네요. 그러면 은숙은 꼭 빗소리가 좋다든가, 비가 와서 정말 좋다든가 하는 답장을 주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다가 문득 은숙이 정말로 비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은숙이 비가 오면 당신을 떠올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동네 꽃집에서 꽃을 사는 이유가 꽃을 사는 자신의 모습이 좋아서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일 년을 흘려보내다 비가 오고 흐린 날이 지속되는 계절이 돌아오면 여러 날에 걸쳐 그녀를 생각한다. 처음 비를 만져보는 몇십 년 전의 아기가, 물웅덩이에 발을 첨벙거리며 학교를 가는 여중생의 뒷모습이, 영수와 한 우산을 쓰고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흙길을 걷는 이십 대 초반의 은숙,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걷다가도 멈춰 서서 비 오는 창밖의 벚나무 이파리를 들여다보는 여자가. 그러고는 모르는 척 또 메시지를 보낼 거다. 비가 와서 좋겠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