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우울할 땐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도망치고 싶고, 그대로 어디론가 훌쩍 떠나 한껏 혼자 웅크리고 있으면 좋겠다. 우울은 마치 한 번 발을 헛디디면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싱크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불가항력인 우울의 중력에 몸을 맡긴 채 밑바닥까지 안전히 떨어질 수 있도록 몸을 맡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른 시간에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해 오래도록 자는 것이 첫 번째, 더 이상 잘 수 없을 때 소음이 가득한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 두 번째. 그게 아니라면 내 감정에 내가 체하기 전에 얼른 글을 쓰며 감정을 배출한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을 글들. 내가 우울을 버티는 방법들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나와 달리 빔은 우울할 때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다고 했다.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빔다운 방법이다. 노숀이는 꾹 참고 기다리는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자거나,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면서 보통의 날들을 보낸다고 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내가 이렇게 글을 같이 쓰는 보통의 친구 붑이었는데, 붑은 많이 운다고 했다. 나의 질문에 자주 운다고 대답해서, 난 사실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붑은 언제나 밝고 명랑하고 스스럼없이 친근하고 맑은 사람이어서 그 이면에 우울이 자리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 속 한 길 모른다는 말이 이런 뜻일까.
지난 주말에는 우울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뇌 과학 임상전문가인 허지원 교수가 말하는 우울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는 한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내담자가 상담을 와 본인의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문제라고 말하면, 교수님은 본인의 자존감도 낮다고 답한다. 교수님인데,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답변이었다. 본인도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있고, 예민한 부분들이 있어서 언제나 그것에 대해 고치려고 노력하고 때로는 후회하며 산다고. 일란성쌍둥이 형제와 차별하는 부모님이 트라우마였고, 그것이 사귀는 애인에게 분리불안처럼 작용하여 몇십 번이고 전화하고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상담을 올 때면 밝고 희망찬 미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은 해가 가면 갈수록 더욱더 우울해질 것이라고. 그러니 우울을 극복해서 이기려고 들지 말고, 버텨내는 방법을 찾으라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 그대로 빵 터졌다. 애써 밝게 포장하지 않으려는 교수님의 단어들과 문장들이 순식간에 마음에 와 닿았다. 솔직함의 힘이었을까.
우리는 자주, 혹은 가끔 내 안에 있는 우울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우울을 버티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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