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누구에게나 우울한 때가 있다. 우울한 증상은 사람마다 기간이나 형태, 주기가 모두 달라서 a에게는 그것이 우울이지만 b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또 장마의 공기처럼 찐득하게 들러붙는가 하면 지나간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우울이 지나가면 벌컥 눈물이 난다. 스스로가 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래서 내가 너무 초라해지고 외로워지면 꼭 그런다.
첫 번째 단계는 보통 집 밖에서 시작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안에서 슬금슬금 올라오는 우울함을 눈치채고, 조만간 눈이 붓겠군. 집에 얼려 놓은 얼음이 있는지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찰랑찰랑한 우울을 느낀다. 주의를 요하는 단계로, 가장 힘든 점은 안전한 곳으로 갈 때까지 눈물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아무 때고 아무 곳에서고 울어도 괜찮았는데. 직장에 다니고서부터는 어떻게든 잘 참아 내야 한다. 봉급쟁이 어른이의 삶은 이렇게나 피곤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면 몸이 편해지니 터질 듯하던 마음은 좀 넉넉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방울이 차오르면 울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이때 발화점은 누군가의 목소리다. 엄마나 애인이나 숩,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샘과 감정이 샴페인 뚜껑 열리듯 펑 터진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가엽게 여기고 보듬어주면 나는 점점 불쌍해지고, 어디까지든 울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에는 혼잣말일 때도 있다. 힘들어, 힘들다고 말하는 스스로의 소리가 너무 슬퍼서 운다.
다행인 것은 엉엉 울어내고 나면 우울한 마음이 많이 마른다는 거다. 또 금방 축축해지긴 하겠지만, 행복하려 애쓰지 않고 그 순간의 슬픔과 눈물을 지나가도록 두면 된다는 걸 나는 꽤 많이 울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울은 모든 생명체들이 죽는 순간까지 마음속에 키우며 살아가는 들풀 같은 거다. 뽑아도 뽑아도 어디선가 다시 싹을 내리고 자라나는, 잡초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의 마음에 깊게 뿌리내리는 들풀. 그래서 마음을 다치지 않고 우울의 뿌리를 캐내려면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좀 들겠지만, 솎아내는 요령이 생기면 해가 뜨고 더워지기 전에 우울을 다 뽑아낼 수도 있을 거고, 남은 우울이 있는지 고랑 사이사이를 꼼꼼히 돌아볼 줄 아는 여유도 생길 거다.
나는 아직 서툴러서 그 뿌리들을 매번 깔끔하게 솎아내지 못할 때가 많다. 갑자기 툭 터지거나 너무 울어서 진짜 못생겨지거나 나도 모르게 나의 우울을 빌미로 남에게 불쾌함을 준다. 눈물이 아닌, 처음 겪는 또 다른 모습의 우울도 있다. 새로운 모습의 우울에 대한 대처방안은 계속해서 연구 중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각자의 우울을 잘 떠내려 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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