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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나길 기다리는 시간들

장마

by 선아키

1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조금은 난감하다.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는 대답처럼 답이 없는 질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지는 사계절을 서른 번 가까이 겪었어도 나는 그들 중 하나를 꼽기가 어렵다. 봄에게는 봄의 좋은 점이, 여름에게는 여름의 좋은 점이, 가을과 겨울에게도 각자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봄의 벚꽃이, 여름의 수영장이, 가을의 하늘이, 겨울의 함박눈이 눈에 밟혀 선택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소거법으로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진 단점은 무엇이었는지 더듬어 본다. 봄의 황사가 괴롭다. 여름의 습기에 숨이 막힌다. 겨울의 귀 떨어지도록 시린 칼바람이 아프다. 다만 가을에게는, 아직도 가을에게는 뚜렷한 단점이 없다. 생각나는 것들은 온통 좋은 것들 뿐이다. 가을에게는 아직 안 좋은 기억이 없다. 없었다. 올해까지 없었었다.




2



8월 15일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는 아빠의 말을 나는 쉬이 믿지 않았다. 자고로 여름과 겨울은 지지부진하게 머물다 몇 번이고 나를 속이고 나서야 겨우 물러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만큼은 신기하게도 무더위가 쉬이 물러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숨을 막히게 하던 꿉꿉한 공기가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름은 그렇게 쉬이 갔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장마만은 데리고 가지 않았던 것이다. 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과 소풍을 기다리는 나와 친구들은 몇 번씩 되묻는다. 도대체 언제쯤 비는 그쳐? 갑자기 이렇게 비가 온다고? 태풍이라고? 사람이 날아갈 만큼 강한 바람이 분다고? 지금? 아, 제발.


어두운 날들이 며칠째 이어졌다. 눈을 뜨면 시간을 짐작 못할 컴컴한 하늘이 무심히도 그 자리에 있었다. 창밖으로 자동차들이 아스팔트 위 물살을 가르고 달리는 소리가 먼발치서 들려왔다. 아침인데도 불을 켰다. 며칠 째 그러한 아침을 맞는다.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아침. 가을장마였다.


내가 다니는 곳곳에는 우산들이 쌓여갔다. 우산들은 회사에 3개, 작업실에 3개 정도씩 생겨났다. 매일 우산을 들고 나오지만 그렇다고 비가 내내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간헐적으로 내리다가, 어느 순간엔 그치고 해가 나서 날 방심시키기도 했다. 여러 개의 우산을 가지게 된 것은 방심의 결과물이다. 몇 번 당하고 나니 젖을까봐 좋아하는 신발을 며칠째 신지 못했다. 신발이 젖는 것은 홀딱 옷이 다 젖는 것보다도 싫다.




3


장마처럼 눅눅한 기분은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온다. 대개는 금방 좋은 기분으로 되돌아오지만, 며칠 정도 그렇게 장마와 같은 기분을 앓는다. 겉으로 봐서는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만 티가 안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눅눅한 그 기분을 웅크리고 견딘다. 다시 힘이 생겨서, 그런 꿉꿉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해 보는데, 그게 쉽지는 않다. 추리소설 속 범인을 찾는 것처럼 나의 행적을 뒤돌아 보면서 어디서 나는 기분이 상했나 찾지만, 큰 이유는 없다. 그렇게 감기처럼 앓는 것이라 여기면서 눈을 꼭 감고 시간이 지나 힘을 되찾길 기다린다. 기다림.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이제와서는 그렇게 여긴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을 이 무렵엔 자주 떠올린다. 사실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도 없고, 땅 위에 무언가를 심어 수확을 한 적도 없는 도시 사람이니 이 속담엔 크게 공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땅이 굳는지 어떤 지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비가 온 뒤 갠 하늘을 볼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비는 그래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 맑은 하늘을 보고 반가우라고. 반가워하라고. 그 정도면 의미가 있지 않나, 다 지나고 나면 조금 긍정을 되찾고 그리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장마도, 장마와 같은 기분도 지나리라 믿고 기다린다. 해가 나길 기다리는 시간들. 결국 나는 장마와 같은 기분을 이겨내고, 장마를 견뎌내고 다시 맑은 주말을 얻겠지. 그러면 잊지 못할 가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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