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엄마는 내가 자라나는 동안 여러 번 말했다. 자리를 떠날 땐 한 번 뒤를 돌아보라고.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자리에 있을 때보다, 자리를 비운 뒤에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종종 당신의 부재를 상상한다.
상상은 밑도 끝도 없이 찾아온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단발성의 상상들은 매우 빠르고 급작스럽다. 그 와중에 규칙을 찾아보자면 이렇다. 겨울과 여름보다는 봄과 가을에, 비가 올 때보다 해가 날 때, 주중보다는 주말에. 그러니까 우울과 불안이 나를 덮칠 때보단 평온과 안정이 내 안에 차올라 있을 때, '이 사람이 내 곁에 없다면'하고 역설적으로 당신의 부재로 인해 겪을 불행을 가정한다. 이것은 곧 내가 지금의 행복을 가늠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삶의 다양한 돌발상황들과 의도치 않은 실수 앞에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내가 저지르는 수많은 실수와 잘못 앞에서 당신이 망설임 없이 괜찮다고 말해 준 덕분에, 나도 대부분의 많은 일들에 대해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나의 강박은 상당히 옅어졌고, 나는 스스로 어느 정도의 회복이 가능한 사람이 됐다.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되뇐다. 큰일이 아니라고. 다시 하면 된다고. 기회는 또 온다고.
당신이 내 삶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다름을 곧 틀린 것이라 재단하고 판단하며 단정 내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나와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모두 달라 나는 당신을 이유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것은 이해라기보다는 배워나가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나의 기준에선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반응들을 익힌 덕분에, 나는 당신 외의 사람들과도 꽤나 원만히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애초에 내 기준에서 판단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관계는 응용력 이전에 암기력을 필요로 하는 과목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누구와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을까. 근황을 업데이트할 필요 없이 일상을 스스럼없이 공유할 수 있는 타인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매일이다가도 중요한 때에 퍽 위로가 되는 순간을 선물한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이런 존재들일 것이다. 몇 달 만에 나타나 강렬한 관심과 흥미를 내보이는 지인이 아니라 은은하게 주변에 있다가 이야기를 서론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지금 이 순간 나의 곁에 머물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들은 곧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그들과 보낸 시간과 그들과 나눈 대화가 조금씩 모여 나의 가치관이 되었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얼마나 큰 영향을 받게 될까. 내가 영향을 받았듯 나도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흔적이 남고,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