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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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고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눌 때, 그가 무슨 감각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곳은 단연 얼굴이었다. 크게 뜬 두 눈동자와 눈꺼풀, 눈썹의 방향, 눈가에 지는 주름과 다물린 입매, 찡그린 코나 빨개진 커다란 귀 같은 것들에는 하나하나 나름의 맥락과 의미가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눈으로도 읽는 것 같았다.
정말 추웠던 겨울날 그녀를 만나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올리브와 치즈를 뒤적거리며 관계와 일, 행복과 즐거움과 고통에 대해 조금씩 서로를 나누었지만 나는 사실 그녀의 말 중 몇몇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 확신에 찬 입매와 노란 창밖 가로등 불빛에 동그랗게 빛나는 이마, 촛불에 일렁이는 단호한 눈빛에 나는 간간이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강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2
여드름이 곪아 가는 이마를 쥐어짜며 하루 종일 신발장 앞 전신 거울에 서 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네 스스로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때부터 너의 진짜 얼굴이 시작되는 거라고. 하얗고 뚜렷하고 매끈한 얼굴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생각했던 아이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조금 더 자란 나는 내 얼굴을 조금씩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버릇이나 습관들이, 약간의 부지런함과 골몰하는 생각들이 얼굴에 나타나고 쌓여서 언젠가 나의 생을 전부 살고 난 뒤에는 지금처럼 동그랗고 시간이 주름진 누구보다 나다운 얼굴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2 - 1
은숙과 영수가 연인이었을 때, 둘이 공주 시내로 나들이를 가면 사람들이 꼭 남매인지 물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서른 해 넘도록 함께 살아 거울보다 서로의 모습을 더 오래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그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의 마실이 전부였을 것임에도 닮은 얼굴 모양새를 하고 시내를 걸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옆에서 걷는 그의 얼굴을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올려다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그의 얼굴 중 가장 아랫부분인 턱과 삐죽삐죽한 수염, 수염 옆에 또 수염, 또 수염.. 묘하게 홀려 그의 수염을 하나하나 세고 있으면 그보다 내가 그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내가 내 머리카락을 세어 본 적이 없듯, 그도 그의 수염을 헤아려 본 적은 없을 것이기에. 그리고 나와 그가 가능한 한 오래도록 서로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일러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르고 날카로웠고, 나는 동그랗고 보드라웠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부딪히고 섞여 조금은 부드럽고 또 조금은 날카로운 얼굴이 되었다. 종종 그와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만났더라도 이렇게 자주 서로의 모습을 살피고 얼굴 살갗을 맞대지 않았더라면, 아주 다른 얼굴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거울을 볼 때보다 그의 얼굴을 볼 때 내 얼굴을 더 자세히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내 얼굴의 부분들은 내가 만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묻히고 묻으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