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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얼굴들

얼굴

by 선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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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섦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눈을 맞출 때마다, 상대방의 눈동자가 내 얼굴 어딘가에 머물기 시작하면 나는 도망치고 싶어 졌다. 낯선 사람과 단둘이 함께 있는 자리에선 어색함에 몸이 경직되었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해야 할 때면 긴장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를 향하는 얼굴들과 그로 대변되는 관심을 나는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내가 내비치는 눈빛과 얼굴의 움직임이 내 안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난 숨고 싶었다.


내 속에는 아무 이유 없이 떠도는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들과 온갖 방향으로 부유하는 산발적 기분들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형의 것을 말의 형태로 꺼내놓는 것은 나에게 일정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상대방의 얼굴을 눈앞에 둘 때에면 시간은 야속히도 흘렀다. 낯선 얼굴에 떠오르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아무 대답이나 하느니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도망치고 싶은 것이었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


그러한 이유로 나는 시간 제약 없이 몇 번이고 고칠 수 있는 글이 좋았고, 원하는 부분은 가차 없이 티도 안 나게 잘라낼 수 있는 사진이 편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




2 낯익은 얼굴들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 탓이었을까. 덩달아 인물 사진도 찍기 불편했고 수월치 않았다. 하루에 촬영지를 몇 군데나 돌면서 도시와 풍경, 거리와 건축 사진을 찍는 것은 전혀 부담이 없었으면서, 뷰파인더 너머로 낯선 사람의 얼굴을 담아야 할 때면 부담감을 느꼈다.


눈과 코와 입, 그리고 얼굴의 윤곽을 이루는 이마와 볼과 턱은 후보정으로 얼마든지 키우거나 줄일 수 있었지만 모델이 보이는 순간의 표정만큼은 어쩔 수 없이 그때가 전부다. 좋은 인물 사진은 렌즈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상대방에게 큰 이유 없이도 호감을 품고, 친절을 베푸는 다정한 성격의 포토그래퍼가 인물 사진을 잘 찍어낸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게 나일 수 있을까. 확답할 수 없다.



사진이 생업이 아니니, 간단한 해결 방식을 취했다. 모르는 사람을 찍지 않는다.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을 피하고, 내가 편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찍는다. 스튜디오처럼 온갖 조명들이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고 즐기는 장소라면 안정된 정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낯익은 얼굴들을 찍는다. 그들과 함께하다 잠깐 뒤로 물러나 풍경 속 나의 사람들을 담는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수저를 양손에 든 표정이나,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옅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리고 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말간 표정을 한 사람들의 얼굴들. 그렇게 나에게 낯익은, 나를 낯설게 바라보지 않는 얼굴들은 좋은 인물 사진이 되어줬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넘어 흘러나온다.


좋은 사진을 선물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사진 속 그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얼굴을 마주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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