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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

식물

by 선아키


계절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하는 일상의 여러 사건이 있다. 계절이 지날 때면 언제나 일어나는 일들. 그중 하나는 아빠가 겨울의 초입에 소철 나무를 바깥마당에서 집 안의 베란다로, 또다시 봄이 오면 소철을 베란다에서 바깥마당으로 옮기는 일이다. 겨울에 바깥에서 소철이 얼어 죽지 않도록, 또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외부에서 빗물을 흠뻑 맞을 수 있도록.


소철의 화분은 혼자서 들기엔 꽤 무거운 데도 아빠는 잊지도 않고 매일의 날씨를 확인하다 소철을 옮길 날을 정한다. 그리고 겨울을 무사히 이겨낸 소철을 보면서 뿌듯해하고, 봄을 지나 쑥쑥 자라나는 마당의 소철을 매일 지나치며 흐뭇해한다. 내가 보기에 소철은 작년과 비교해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소철이 새싹을 틔운 것을 보라며 아빠가 날 부르는 때가 있다. 잘 모르겠지만, 그렇구나 한다. 소철은 가까이 다가가면 따갑기만 하고, 뾰족하고 넓게 퍼지는 이파리가 예뻐 보이지 않는데도 아빠는 소철에게 잘해준다.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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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도 식물들을 데려왔다. 어찌 보면 다 똑같은 나무들인데도, 우리는 우리가 데려온 나무들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올리브, 코로키아, 폴리안, 릴레, 옹호씨, 선아귤나무. 그리고 화분에는 이름과 물 주는 빈도를 안내하는 푯말이 꽂혀 있다. 어떤 아이는 열흘에 한 번, 또 어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물을 듬뿍 줘야 한다. 여름과 겨울엔 물을 먹는 주기도 다시 달라진다. 해를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햇빛에 타버리는 애들도 있다. 물을 주는 족족 잘 받아먹는 애들도 있지만 물을 많이 주면 오히려 싫어하면서 잎을 잔뜩 떨어뜨리는 예민한 애도 있다. 식물도 사람처럼 성격이 모두 다르다.


예전에 회사에서 식물들을 관리할 때에는 달력을 만들어서 날짜에 맞춰 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관심을 주며 살핀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루아침에 폭삭 시들지 않는다고 현재 괜찮은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어서 살피는 버릇이 중요하다. 겉흙이 말랐는지, 혹은 아직 촉촉한지. 잎의 방향과 색이 어떠한지. 물을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 주더라도 흙을 만져봐서 아직 촉촉하면 조금 나중에 주기로 한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겨울을 무사히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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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식물들에도 봄이 왔다. 실내에만 있었는데도 귀신같이 안다. 겨우내 선아귤나무 혼자 자라는 것 같았는데 (선아귤나무 본명은 사계귤나무로, 이름대로 사계절 내내 귤이 자란다.) 며칠 전엔 폴리안 끝에 작은 새싹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데려온 이후로 여린 가지가 그대로 꼬꾸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는데, 봄이 오면서 단단해지고 곧추 서는 것 같더니 새싹을 낸 것이다. 색이 빠진 큰 잎과 다르게 밝은 연두색을 가진 싹이었다. 어린것들은 어찌 그리 동식물 가리지 않고 예쁠까.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리고 지속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예쁜 것일 테다. 아빠가 소철을 예뻐하는 것처럼.


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작업실의 식물들도 베란다로 내놓아 주려고 한다. 햇빛을 더 듬뿍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아빠가 매년 봄이 오면 소철을 힘겹게 1층으로 내려 마당으로 데려갔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나 보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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