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스무 살부터 자취를 시작해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의 주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장 봐온 재료를 손질해 밑반찬을 만들고 굽고 찌고 삶는 일을 하기 전에는 일종의 기합 같은 걸 넣어야 한다. 주방에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서서 일련의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도, 좁은 공간에서 도마와 칼, 조리에 사용한 크고 작은 그릇들을 닦아 정리하는 것도, 먹고 난 다음의 설거지까지도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들어진 음식을 먹어치우는 시간은 요리하는 시간에 비해 늘 너무 짧다. 자연스럽게 혼자의 식사를 준비할 때면 최대한 간단하고 정리할 그릇이 적게 나오는 메뉴를 선택하게 됐고, 그때의 요리는 허기를 달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했다.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2018년 초 H와 동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우리는 보통 각자의 바쁜 날들을 보내고 여유로운 저녁이 생기거나 주말 아침이 되면 함께 밥을 먹었다. 누군가가 밥 먹을 거야? 운을 떼면 다른 한 사람이 그래. 하고 부슬부슬 일어나 좁은 주방에서 요리조리 서로의 동선을 피해 음식을 했다. 누가 불 앞에 서 있으면 다른 누구는 재료를 다듬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이삼십 분 정도, 작은 그 공간 안에는 우리와 작게 틀어 놓은 음악과 주방 팬이 돌아가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그릇, 가열된 것들에서 나온 수증기, 허기진 냄새, 수돗물을 틀고 잠그는 소리 같은 것들이 가득 돌아다녔다. 둘의 주방은 좀 좁긴 했어도 한 명의 주방보다는 풍요로웠다.
우리는 H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밑반찬, 돼지고기 김치찌개, 옥수수 넣은 계란말이, 무조림, 장아찌, 카레, 오이 고추, 배추전이나 두릅 튀김, 비빔국수, 된장국, 옥수수 콩밥 같은 것들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숟가락질을 했다. 그러다 보면 식탁 위로는 바쁜 시간대에 못다 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어. 어떤 생각을 하게 됐었어. 뭐가 좋았어. 누구 때문에 힘들었어. 이걸 하고 싶어. 그거 정말 신기하더라. 그런 사소하고 중요한 말들 사이에는 이거 너무 맛있다. 그치. 저번에 먹었을 땐 왜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지. 다음에 또 해 먹자. 그래. 같은 말들이 섞여 꼭꼭 씹혔다. 그렇게 천천히 밥을 다 먹으면 한 명은 설거지를 했고 다른 한 명은 방에 드러눕는 대신 근처를 얼쩡거리거나 과일을 깎으며 서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면 꼭 그를 위한 요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희생이 다른 이의 행복을 만들고 그러면 결국 모두 행복해질 거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H와의 동거 후 깨달은 건, 한 끼의 식사에 꼭 한 사람만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이렇게 특별한 일을 매번 함께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둘이서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일은 누군가의 노동이라기보다 즐거운 이벤트였다. 결국 음식을 하고 먹고 정리하는 시간까지 하나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건 우리가 건강하기 때문이었고, 서로를 그만큼 가까이 들일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였고, 결국 상대를 많이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최근에는 새로운 동거인 S와 시간이 맞을 때, 또는 누군가가 집에 놀러 올 때에 요리를 한다. 즐겁게 음식의 순서와 곁들일 술을 생각하고 기꺼이 부엌에 서 요리를 한다. 반가운 이들과 순간의 기분과 이야기를 나눠 먹는다. 이렇게나 좋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