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올해로 회사를 다닌 지 5년 차가 됐다. 5년 차라니,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대학교를 다닌 만큼(5년제였다), 나는 회사를 다녔다. 그것도 매일. 방학도 없이. 장하다, 나 자신.
나와 같은 해에 졸업하고 취직한 동기들도 모두 5년 차가 되었고, 디자인 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한 두 번씩의 이직을 겪었다. 퇴사했다는 친구의 연락이 올 때면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잘했다고,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파티를 해야겠다며 친구들과 모여 퇴사 파티를 매번 가졌다. 한참을 퇴사의 이유에 대해서 떠들었다. 소재는 끝이 없도록 나왔다. 회사 욕은 밤새도록 할 수 있었다. 어쩌다 퇴사는 이렇게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 되었나.
많은 건축사사무소의 신입 사원들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기 시작한다. 인턴이라고 부르곤 하는 그 수습 기간은 최대 2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1년 간 인턴을 했다는 사람도 종종 본다. 언젠가 어떤 후배는 나에게 회사를 다닌 지 한 달이 넘지 않아 본인 월급이 얼마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연봉은커녕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야근을 한다. 오늘 단톡 방에 저녁 먹자고 글을 남겼더니, 다섯 명 넘게 야근을 한단다. 또 사람들은 주말 출근도 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야근을 하면 야근 수당을 받아야 하고, 주말 출근을 했으면 또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회사를 다닌 지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휴가를 못 쓰면 또 그것을 얼마로 쳐서 받아야 하는지까지, 회사는 나에게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1년에 유급 휴가를 15일 꼬박꼬박 챙겨서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휴가를 자꾸 몸이 아파서 쓴다는 이야기만 많이 듣는다. 휴가를 쓰지 못하면 돈으로 정산해서 준다는 설계사무소는 들어본 바 없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대학교에서 가르쳐줘야 하는 것은 이런 내용들이었다. 사회에 나가자마자 을이 알아야만 하는 노동법. 우리가 지켜야 하고 보장받아야만 하는 권리. 일하는 대가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용기와 방법. 그런데 회사에서는 직원에게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디 가서 이런 것을 배우겠냐며. 이 업계는 원래 이런 것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아주 자주 본다. 연봉협상은 다들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 입사 시 연봉이 얼마인지 묻는 것이 왜 건방진 일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건축사사무소 중 고작 야근을 하지 않고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로 쳐지는 상황이 나는 부끄럽다. 좋은 근로 환경을 만들어 놓지 않은 윗세대는 이럴 때 참 밉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도록 방치해 두었고, 지금에 와서는 그땐 그랬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다 그렇게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널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지켜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배운다. 쉬쉬거려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참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적어도 다음 사람을 위해 말해야 한다. 부당하다고, 이런 곳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모두가 거부하면, 회사는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