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나에겐 관계에 대한 믿음 한 가지가 하나 있다. 내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또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것. 그래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크게 즐기지 않아도,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는 일은 여간해선 거절하지 않는다. 특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내 친구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은 사람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만다. 오다가다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게 되는 대학교 생활과 달리, 따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만나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지속하는 관계는 아무래도 조금 더 특별하다.
그러다 재작년, 처음 작업실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친구의 친구들을 본격적으로 만날 기회를 갖게 됐다. 내 친구 빔과 직접 꾸미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공간에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렇게 열리는 자리를 우리는 빔바라고 부른다. 빔바는 내 친구가 네 친구가 되고, 네 친구가 내 친구가 되는 곳이다.
빔바가 열리는 날이면 우리는 요리를 한다. 초반의 빔바에서는 이미 조리된 식품을 사 와 데우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직접 음식 재료들을 장 보고, 손질해서 요리한다. (심지어 이제는 재료를 키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뉴는 점점 다양해졌다. 한식, 양식, 일식을 넘어 중식, 터키, 베트남, 스페인 음식까지 도전한다.
여행의 시작이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듯, 요리도 어떤 음식을 할지 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보통 빔바의 날 일주일 전부터 어떤 음식을 할지 고민한다. 요새는 어떤 재료가 맛있는 때인지, 최근 해보고 싶었던 요리가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계절과 기분인지. 여름엔 아삭하고 상큼한 종류의 요리를, 겨울엔 뜨끈한 국물이 있는 요리로 준비하는 편이다.
당일이면 넉넉히 한 시간 반 전부터 작업실에서 빔솊의 진두지휘 아래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만들고, 부족한 재료가 있으면 재빨리 바깥으로 나가 사 온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나면 어느새 손님들이 올 시간. 테이블 위를 깨끗이 치우고 수저를 놓고 나면 그날의 손님들이 문을 똑똑 두드린다.
단순히 친구를 소개받는 자리라면, 빔바는 아마 몇 번의 시도로 금방 끝이 나버렸을지도 모른다. 2년여 동안 빔바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역시 직접 만든 요리의 힘이 크다. 처음 만나거나, 아직 낯을 가리는 친구의 친구들은 함께 동그란 테이블에 모여 앉아 같은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다. 우리가 준비한 요리는 대화를 쉽게 시작할 수 있게 한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걸 직접 한 것이냐. 이건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 맛있다. 처음 먹어 본다. 이건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 혹시 못 먹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냐. 입맛에 맞으면 다행이다. 다음 요리도 준비되어 있으니 아끼지 말고 먹자. 그렇게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진다. 이미 같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작은 공통점이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요리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함께 먹는 것만으로 낯선 이와 나의 거리는 훨씬 빠르게 가까워진다. 하물며 직접 한 요리의 힘은 더 크다. 빔바에서 나는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고 먹지 않았을 요리들을 맛보게 되었고,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친해졌다. 그래서 나에겐 요리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동반자 혹은 친구를 뜻하는 영단어 companion은 함께 식사를 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요리를 통해 우린 앞으로 또 어떻게 관계를 더 깊게, 더 넓게 확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