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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행복하기를

<고양이>

by 빈부분


1.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동물은 고등학교 때 키웠던 작고 하얀 햄스터였다. 엄마는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그 햄스터는 눈물과 생떼와 타협 끝에 겨우 데려온 아이였다.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걔에게 피그뽕이라는 이름을 붙여 톱밥을 푹신하게 깐 집에 넣어 주었다. 피그뽕의 작고 동그란 몸통을 손바닥에 가만히 올려놓고 그의 숨을 손바닥 피부로 느끼고 있자면 뭐랄까, 말하지 않아도 얘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겠달까 그랬다. 그래. 밥을 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그뽕은 책상에서 자꾸 점프를 시도하고, 아무리 문을 꼼꼼하게 닫아 놓아도 탈출하고, 형광색 햄스터 볼에 들어가 거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우리를 많이 웃게 했다.
피그뽕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후로 한동안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대로 돌보아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너무 많이 울었다.


2.
아빠가 제일 좋아하던 만화 톰과 제리에서는 귀엽고 영리한 쥐와 조금 못돼 보이고 바보 같은 고양이가 나왔다. 제리는 항상 약자였지만 항상 톰을 이기는 쥐였다. 우리는 톰이 맞거나 줄에 걸려 넘어지거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깔깔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고양이는 전혀 그렇게 못된 얼굴이 아니라는 걸,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전혀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게 제리가 정말로 영리해서라기보다 톰이 제리와 놀아 준 것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됐다.

3.
고양이 몸을 이루는 곡선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동그랗게 솟아오른 발등의 털과 발바닥의 젤리도, 코와 볼로 연결되는 곡선에도, 살랑이는 꼬리, 길게 쳐진 흰 수염에도 자연스럽고 나른한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양이도 늘씬하게 근육이 붙은 고양이도 모두 그런 곡선들로 그려져 있다.
고양이의 눈 안에는 빛나는 우주가 있다. 전에 빔 언니의 고양이 애기의 눈이 너무 예뻐 내 의자를 빼앗고 앉은 그녀의 눈을 가만히 마주치다 뺨을 맞았지만 그래, 이렇게나 예쁜 우주를 보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 할 정도로 그 우주는 깊고 아름답다. 그 아이들은 그런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잘 먹고 건강한 고양이의 털만큼 윤기 나는 털이 또 있을까. 검은, 점박이, 회푸른, 갈색 등등 다양한 털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햇살처럼 노란 고양이 털을 가장 좋아한다. 얼굴을 부비면 따뜻하고 부들부들 행복한 냄새가 나겠지.

4.
도시의 원룸촌에는 늘 고양이가 많다. 다양한 쓰레기가 나오고, 몸을 숨길 수 있는 으슥한 곳도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종종 내가 내미는 손길을 피하지 않는 고양이를 만나면 반갑고 예뻐 열심히 쓰다듬으면서도 그들이 걱정된다. 누군가 이렇게 살가운 아이들을 해하지는 않을까.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언제나 자동차, 날카로운 것들,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굶주려 있더라도 후다닥 도망가는 고양이들을 속으로 응원한다. 그렇게 날쌔게 도망가야 해, 어디서든 어느 상황에서든 아깝게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어야 해. 안타깝게도 이 정신없고 험난하고 복잡스러운 세상에, 아이들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그것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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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사실은 마감에 쫓겨) 쥐 이야기로 시작해 고양이 이야기로 끝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떤 동물과 함께 살게 된다면 그게 고양이였으면 하고 생각한다. 뭘 하든 모양새를 지켜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예쁜 노란 고양이.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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