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딱 그만큼 의 관계
대부분의 SNS가 거대한 광고판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SNS의 핵심은 역시 '관계'에 있다. 싸이월드에도 일촌은 있었고, 페이스북도 친구 추가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조금 더 간편한 관계를 원했고, 그것은 '팔로우' 기능으로 바뀌었다. 쌍방이 합의해야만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다면 요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관계들이 있다. 못 본 지 몇 년은 되었지만 여전히 '팔로우'로 이어져 있는 관계들.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친분을 나누지 않아도 이어져 있다는 얕은 감각. 어떤 사람들은 이런 가벼운 관계들을 말 그대로 가볍게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그 관계가 가벼울지언정 헐겁다고 말하긴 힘들다. 5년 동안 만난 적 없지만 인스타그램 피드로 꾸준히 소식을 받아보는 친구와, 1년에 한 번씩 만나지만 인스타그램 팔로우는 되어 있지 않은 친구 중 어디에 더 친근감을 느낄까? 아마 전자에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거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 일상을 공유한 적은 없지만 서로의 일상을 훨씬 주기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니까.
종종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생각이 난다. 우연이 아니라면 영원히 보지 못할 얼굴들을 떠올리며, 인스타그램 계정 정도는 받아 놓을 걸 그랬나 후회하기도 한다. 연락처는 부담스럽고 '팔로우'라도 되어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그래서 이런 관계들도 때론 붙잡고 있어야 할 이유가 된다.
깃털처럼 가벼운, 언팔로우 한 번이면 영원히 끊어져버릴 얕고 희미한 관계들. 간편하고 쉬운 관계처럼 보이지만 쉽게 놓아버릴 수 없다. 놓아버리는 순간, 정말로 끝이니까.
우리는 SNS에 예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전시한다. 예쁜 옷, 예쁜 공간, 예쁜 풍경, 혹은 예쁜 모습의 나. 누군가는 예뻤던 나의 순간들을 동경하고, 나의 순간들을 팔로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간단한 터치 두 번의 ‘좋아요’로 호감을 표시한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초 남짓의 시간과 터치 두 번이 전부다. 호감의 표시도 그 관계만큼이나 가볍다.
계정을 퍼블릭하게 운영하기 시작하는 순간, 관계의 의미는 재정의된다. 일방적 관계와 일방적 호감이 커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들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인플루언서. 말 그대로 영향력 있는 사람. 팔로우 숫자는 이제 다른 의미가 된다. 팔로우 수 그 자체가 권력이다.
걔가 팔로우가 벌써 2만 명이 넘은 인플루언서래. 요즘은 10만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이번에 올린 게시물은 '좋아요'가 많이 없더라. 내 사진이 이젠 별로인가?
우리는 그 관계에 집착하게 된다. 인기 있는 해시태그를 갖다 붙이기도 하고, 돈을 받고 팔로워를 늘리기도 하며, 인기 계정을 사고팔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팔로워'의 반응에 전전긍긍하게 되고, 제발 더 많은 사람이 내 계정을 '팔로우' 해주기를, 새로 올린 게시물에 '하트'를 많이 눌러주길 바란다.
너와 나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시작된 소셜 미디어의 범위가 나와 우리의 관계로 바뀌는 순간, 시선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다. 새롭게 만나는 '우리'에게 인정받고자 SNS에 전시되는 나의 순간들은 더욱 꾸며지기 시작하고, 알맹이 없는 허울만 남게 되기도 한다.
터치 한 번의 팔로우와, 터치 두 번의 좋아요. 관계와 호감은 딱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다.
그 무게들은 나를 그저 가볍게 스쳐 지나가면 될 텐데, 하나둘씩 모여 되려 내 목을 조여 오기도 한다. 가볍고 얕고 희미하고 느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시하지 못할 만큼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번의 터치가 이렇게나 무거워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