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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 공기

<전화>

by 빈부분

90년대 말에서 00년대 초, 내가 살던 동네에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숙제를 물어보거나 놀자는 이야기, 크고 작은 고민 상담 같은 것들을 하려면 꼭 친구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야 했다. 전화는 보통 애들보다는 어른들이 먼저 받았기에, 친구의 가족 중 하나로 추정되는 낯선 목소리가 여보세요-하고 전화를 받으면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에 준비한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동도초등학교 이학년 사반 누군데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누구 집에 있나요? 그러면 그 낯선 이는 수화기에서 고개를 돌리고 누구야- 누구란다! 전화받아! 너무 오래 하지 말고.. 하며 친구를 바꿔 주었다. 그러면 나는 용건을 전달하는 대신 고불거리는 전화선을 검지에 꼬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조잘조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고, 적당한 말이 떨어지면 해야 했던 말을 후다닥 한 뒤 수화기를 내려놓곤 했던 것 같다.


이십 년 정도가 흐른 2021년의 나는 이제 직장인 3년 차가 되었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과 더 자주 전화를 한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여덟 살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심장이 두근대고 비적비적 땀이 났다. 해야 할 말들을 다 준비해 놓고 자료도 화면에 차례대로 띄워 놓은 다음 통화 버튼을 누르며 그가 전화를 안 받기를 바랐다. 받지 말아라, 받지 말아ㄹ..안녕하세요. 김부빈입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건 상대적으로 편했지만, 내 쪽에서 전화를 거는 건 너무 긴장이 됐다. 용건이 있는(필요한) 쪽이 좀 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응당 해야 할 전화에도 그런 기분을 느끼곤 해서 전화해서 뭘 받아내 놓으라고 하는 지시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시켜야 하는 말들을 어떻게든 조목조목 늘어놓다 보면 내가 통화를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는 누군가가 나의 성대를 통해서 말을 전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가 자꾸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몇 번의 통화가 식은땀과 두근거림, 붉어진 얼굴로 지나간 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했다. 모르면 확인하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면 되니까. 나도 모르는 게 있고 너도 모르는 게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진 뒤로부터는 자연스럽게 전화 너머에서 숨 쉬는 사람의 성격과 표정, 공간이나 감정을 상상하게 됐다. 바깥의 소리가 조금씩 목소리에 묻어올 때, 수화기 너머의 공기를 타고 다니는 소리들이 들리고, 목소리의 톤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기분이 귓바퀴로 파고든다. 전화를 끊고 그 소리들을 종종 곱씹는다. 모두 사람이니까, 그래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든 일을 하지 않든 전화를 하는 나의 모습을 종종 돌아본다. 너무 나의 입장에서 쏘아대지 않았나, 쓸데없이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나, 좋은 일에는 좋은 티를 냈나, 고맙거나 미안한 일들에 나의 감정이 그에게 정확하고 올곧게 전달되었을까 하고. 나의 전화가 누군가를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반가운 전화를 거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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