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우중이지!

<비>

by 빈부분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비를 불편해하며 살았다. 비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왜 비가 좋은지 꼬치꼬치 캐물어 가며 좋아하려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피부에 들러붙는 습기나 거추장스러운 우산, 미끄러질까 조심해야 하는 바닥 같은 것들 때문에 비 오는 날이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다만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어느 비 오는 날, 따끈한 국물에 소주를 마시는 건 비가 오는 편이 즐겁다는 것을 깨닫고 가끔 비가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비가 오면 특별히 더 불편한 상황들이 생긴다. 걸어서 시장을 다녀올 때, 흰 신발을 신었을 때, 비포장 도로를 지날 때, 우산이 없을 때 등등. 비 오는 날이 특히 더 싫다고 느끼던 날은 보통 외부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외부 활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캠핑만큼은 절대로 비 오는 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모든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주는 아니었다고 해도 나와 애인이 캠핑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에는 보통 비가 왔다. 하루는 해가 쨍하다가도 캠핑장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이 정도면 날씨 요정에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은 날도 있었다. 텐트를 치기 전부터 비가 오면 터를 잡고 텐트를 펼치고 폴대를 조립해 텐트를 일으켜 세우는 일련의 작업들을 정말로 서둘러서 해야 한다. 뽀송했던 머리카락과 선크림을 바른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겉옷이 젖기 시작하면 즐거웠던 기분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조급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얼른 텐트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말리고 싶다, 오늘 같은 날은 불을 피워도 연기가 많이 날 텐데, 화장실 다녀오려면 계속 우산 써야 하네.. 같은 불편한 상황들이 우리 캠핑 왔다! 하는 신나는 마음을 자꾸 누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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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정말이지 입을 꾹 닫고 착착 움직이는 것이 답이다. 나는 평소 쉽게 당황하거나 분위기에 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때만큼은 애인과 손발을 맞추어 잽싸게 텐트를 친다. 최대한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고민은 최소화한다. 후다닥 들어간 텐트 안은 조금 습하지만 충분히 아늑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뽀송한 수건으로 몸을 말리고 불을 피운다.


그러고 나서는 텐트 안의 세계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비 오는 날은 텐트 속 세계가 더욱 견고해진다. 군데군데 서 있는 텐트와 텐트 사이에 비가 끼어 거리가 더 멀어진다. 우리가 세운 세계는, 하루뿐이기는 하지만 위험천만한 바깥세상으로부터 나의 지금을 지켜 주는 집이 된다. 세상에 있는 것이라곤 우리가 만든 작은 불빛과 내리는 비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가 내려 즐겁다. 빗소리와 화음을 내어 자글거리며 익는 음식과 술, 피어오르는 김,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 서늘한 비를 머금은 회색빛 바람과 따뜻한 커피,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의 짙어지는 색, 산 저편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것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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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비에 훈련된 덕에, 지금은 비가 올 것 같은 캠핑 날을 앞두고 있어도 캠핑은 우중이지! 하는 넉살을 보일 수 있게 됐다. 비를 기다리지는 않지만 비가 와서 기대가 된다. 비가 와야지만 더 좋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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