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의 부지런한 여가

<캠핑>

by 빈부분

이번 보통 글의 주제가 캠핑이었던 이유는 <2021 보통 워크숍>(내 마음대로 워크숍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있어 보이니까)으로 1박 2일 캠핑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아마 누누(선아언니)가 처음으로 제안을 했었을 거다. 나와 민진은 운전을 못 하니까. 누누는 최근에 운전을 꽤 잘하게 된 것 같았다. 바퀴 달린 자동차가 있으면 캠핑의 난이도는 훅 내려가고 질은 휙 올라간다. 그녀가 액셀을 밟아 주고 민진이 꼼꼼히 검토해 주어 우리는 무사히 캠핑장을 예약했다. 셋 중 그나마 캠핑 고수였던 나는 텐트라든지 하는 기본적인 장비들이 있었고, 생일을 맞이하여 이런저런 자잘한 장비들을 뜯어내는 데에도 성공했기 때문에 짐을 싸는 역할을 맡았다.


바로 한 달 전쯤 캠핑은 우중이지! 라는 제목으로 자신만만한 글을 썼는데 캠핑을 가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입술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어쩐다? 사실 나는 괜찮았다. 내가 캠핑을 가는 날이면 날마다 비가 왔기 때문에, 타프가 무너지고 젖은 텐트를 둘둘 뭉쳐서 돌아온 적도 있었기 때문에, 비가 내리고 축축한 상황도 그런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그러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누누와 민진 모두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캠핑은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했고, 때는 습한 여름이고, 덥고 지쳐 캠핑이 힘들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었다. 두 사람이 오랜만이거나 처음 하는 캠핑을 즐겁게 기억했으면 했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날씨 요정의 가호를 받은 사람이 있는 것인지 하늘이 파랬다. 볕이 뜨겁기는 했지만 비가 올 낌새도 없고 구름도 예뻤다. 도착한 캠핑장의 데크 옆에는 큰 나무가 자라 큰 타프가 없는 우리의 텐트 위로 그늘도 만들어 주었다. 사실은 캠린이지만 상대적 조장이 되어 버린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열심히 텐트를 쳤다. 얼른 텐트를 세우고 선풍기를 틀어 주어야지, 하는 일념이었다. 민진과 누누는 처음 치는 텐트가 어색하고 헛갈렸을 텐데도 한 번 말해 주면 슥슥 필요한 부분을 잡아 주고 당겨 주었다. 삼십 분 정도 지나자 3m X 5m 남짓한 나무 평상 위에 그것보다 살짝 작은 오렌지색 집이 생겼다.


텐트를 칠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텐트 스킨을 펼쳐 폴대를 끼운 다음의 과정이다. 스킨에 끼운 폴대를 휙 들어 올리면 내부에 공간이 생긴다. 2D였던 평면이 3D인 공간으로 변한다. 어어? 하면 집이 생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다 만들어 놓은 부재를 하나씩 연결해서 완성품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위요감 있고 아늑한 내부와 여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외부가 종이만큼 얇은 천 하나로 갈린다.



비가 오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두 사람을 얼른 쉬게 해야지 했던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텐트를 치고 의자를 펴고 짐 정리라든지 하는 자잘한 일들도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조잘조잘 바쁘다가 할 일이 없으니 좀 멋쩍어지기까지 했다. 나는 괜히 빈 백에 누워 책을 읽고 술을 마시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다녔다. 원래 캠핑을 오면 이렇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것이군, 웃기게도 이렇게 바쁘지 않은 캠핑은 진짜 처음이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노래 좀 틀어 놓고 몇 분 그러고 있으니 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적응해버려서, 게으르게 오후를 보내버렸다.


자연 냉장고


캠핑이 재미있는 건 인간의 필수 요소인 의, 식, 주 중에서 식과 주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여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주가 해결되고 나면, 끊임없이 먹는다. 저녁 시간이 되자 누누는 계속 닭갈비와 야채를 구워 주었고, 술을 마셨고, 우리는 불꽃이 타는 모양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진짜 좋다는 걸 느낀 건 아침이 되어서였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오전 다섯 시쯤이었다. 거실 앞쪽으로 타프를 쳐 놓고 잠든 터라 해가 뜨고 날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산 밑이라 그런지 약간 추웠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남은 장작을 태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해가 점점 올라왔고, 물이 반짝이고, 텐트 앞의 작은 호수에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헤엄쳤고, 흔들리는 물결이 반사하는 빛과 잎사귀의 그림자가 텐트 안에 비쳐 일렁거렸다. 조용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옆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고, 나는 그냥 그러고 앉아 있을 수 있어서, 마음의 어딘가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아침 풍경


아침 풍경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어도 캠핑을 다니려면 어느 한 구석탱이만큼은 부지런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건 여행을 다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부지런함이다. 여행에는 호캉스라는 이름 아래 정말 몸만 가서 쉬다 오는 여행이 있는 한편, 캠핑은 미니멀한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이든 온갖 장비를 차에 싣고 오토캠핑을 가는 사람이든 기본적인 전제로 주와 식을 해결하는 노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을 바쁘게 움직이고 나면 생각을 멈추고 누구보다 게으르게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 게으름뱅이의 부지런한 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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