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붑의 집에 쌓여 있는 짐 더미들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붑은 정말 진지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챙긴 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부피에 내가 그만 놀라버리고만 것이다. 그곳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1박 2일 일정이 정말 맞냐고 물었고, 붑의 애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항상 이 정도 짐은 가지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그치고, 의기양양하게 들고 온 접이식 카트를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붑의 짐들 중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없었으며, 차에 빈틈없이 꽉 채워 겨우 실을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운전은 내가 맡아했는데, 그것은 운전을 핑계로 캠핑 선배 붑에게 의탁해 텐트를 비롯한 온갖 용품을 빌려 쓰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흑심 때문이었고 또 더군다나 나는 운전을 피곤해하지 않는 편이며 오히려 꽤 좋아하는 축에 속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캠핑장으로 떠나는 차 안에서 DJ는 민진이에게 부탁했고, 드라이브용 노래로 신나는 음악을 부탁하자 민진이는 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여름 노래로 선곡을 해주었다.
캠핑을 계획하는 초반에는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으로 떠나고자 했으나, 캠핑장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하자 곧 캠핑장 예약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캠핑장들은 대부분 특별한 시설이랄 게 없어 보였으나,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고 좋은 장소를 찾고자 하니 꽤 막막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요소들이 기타 다른 종류의 숙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다른 친구의 추천으로 원주에 있는 캠핑장의 데크 하나를 빌렸다. 가격은 얼마인지, 전기는 끌어다 쓸 수 있는지, 늘어선 데크 중에 어떤 데크가 제일 좋을 것인지, 차량을 데크 옆에 바로 주차할 수 있는지 등은 생전 처음 캠핑에 도전하는 민진이가 맡아 꼼꼼하게 알아봐 주어서, 좋은 자리로 구할 수 있었다. 도착하기 전엔 알 수 없었지만, 심지어 나무 그늘이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민진이의 의도였나? 그건 잘 모르겠다.)
텐트는 생각보다 금방 쳤다. 한 시간은 넘어갈 것이라 예상했는데, 다른 곳에선 조수 역할을 맡아했다는 붑은 우리 사이에선 캠핑 대선배로서 진두지휘하며 30분이 안 되는 시간 안에 뚝딱 텐트를 완성했다. 붑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심부름을 주로 했던 나와 민진이는 붑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부어주었다. 지금 와선 더 과하게 칭찬할걸, 약간 아쉽다.
캠핑 의자와 테이블을 펴고, 노래를 틀어 놓고, 각자 선풍기를 쐬다가 계곡물에 칠링 된 화이트 와인을 땄다. 아직 저녁을 준비하기 전까지 꽤 시간이 남아, 각자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글을 썼다.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텐트 바깥쪽의 계곡을 바라보기도 했고, 뒤늦게 도착하는 양옆 데크의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기도 했다. 대충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었는데, 캠핑 대선배 붑은 한 번도 이런 시간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캠핑을 잘 모르는 나는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지러 캠핑을 오는 것이 아니었나!
저녁엔 불을 피웠다. 캠핑의 꽃은 캠프파이어지. 합법적 불놀이를 양심의 가책 없이 할 수 있는 시간. 가을, 겨울이 아닌 것이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다른 것은 다 좋았는데, 역시 장작은 쌀쌀한 날에 태워야 맛이다. 나는 과한 의욕에 장작을 두 박스나 시켜 사 왔는데, 생각보다 장작이 오래 타서 다 못 태우고 한 박스는 붑에게 기부했다.
캠핑을 이렇게 제대로 다녀 본 적이 없었어도, 캠핑을 가자고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가 되었든 숙면을 취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붑은 이번 캠핑에 많은 것을 새로 사 와줬지만, 그중에서도 에어 침낭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고 바닥에서 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어느 곳도 배기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민진이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까봐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민진이 포함 우리 셋 모두 잘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캠핑의 목적은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를 테지만, 나의 목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 데에 있다. 해야 할 일들에게서 멀어지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아주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공유하는 것. 그 시간을 위해 많은 짐을 챙기는 준비를 해야 하고, 도착해서도 꽤 많은 노동이 필요하니 그것은 캠핑의 모순된 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