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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Dec 13. 2021

월급쟁이 삼 년

<돈>

 나는 일주일에 오일은 출근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을 사람들은 월급쟁이라고 부른다. 내가 월급쟁이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 만으로 삼 년이 되었다. 삼 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돈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제대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노동과 돈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던 것처럼 내가 출근하는 이유는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돈과 바꾸자는 계약에 서명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누군가는 정말로 일을 사랑하거나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들이 좋아 노동을 하기도 한다. 사회 소속감이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든지 하는 부가적인 이득이나 미래를 바라보는 커리어적인 이유도 있겠다. 그러나 당장 회사가 통장에 돈을 꽂아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는, 그 회사로 노동을 하러 갈 일은 없을 거다. 


 이전에는 노동이고 돈이고 시간 같은 개념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돈을 따지는 것은 디자인을 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에게 터부시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나는 그저 어렵다던 취업을 했고, 약간의 눈치 속에서 다들 야근을 하니까, 할 일이 충분히 많으니, 더 일을 하고, 월급은 주는 대로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해야지 하면서, 매일매일 서너 시간 더 일을 하는 데에는 불만이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언제인가부터 나는 노동과 돈을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었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돈이 생기지 않으니 나는 가치 있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년차가 시작될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사람들은 혼돈스러운 상황을 기회로 잡아 돈을 굴리기 시작했다. 너나할 것 없이 주식 시장과 비트코인에 뛰어들어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거나 부자가 되었다. 옆에서 하니까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한 달을 꼬박 앉아서 버는 돈을 몇 분만에 벌어들이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니 배알도 꼴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투자를 할 수는 없으니 이런저런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고 블로그와 책, 뉴스도 들어 봤지만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았다. 쓸모 있는 노동자를 지향했던 나의 가치가 자꾸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는 클릭 몇 번으로 부자가 됐대, 부자가 되어서 퇴사를 했대, 놀고먹고 잘 산대,,, 


 나는 그렇게 발 동동 구르다 모은 돈은 없고 쓸 일은 많아진 삼 년차 월급쟁이로 진화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한 애인과 결혼했다. 결혼이라는 걸 하고 나니, 지금껏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던 몇십 년 후를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그 길을 깔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실감이 났다. 나의 근로 소득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저 어딘가의 점에 닿으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덮어두고 꾸역꾸역 재태크 상식을 쌓아나가고 있다. 아직은 배워가야 할 것이 많지만, 언젠가는 하기 싫은 노동보다 하고 싶은 노동을 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줄 수 있는 여유로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돈이 많아야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가지, 열매, 그럭저럭 기능하는 몸과 조금 느리지만 날카로운 눈썰미 같은 것들이 주는 행복은 돈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웬만한 작은 행복을 아는 사람에게 두 배로 행복할 것을 세 배로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돈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게 없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데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당분간은 열심히 적당히 탄탄한 노동자로 지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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