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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Dec 13. 2021

우리의 꿈이 처음부터 부자였던 적이 있었을까

<돈>

독립을 했다. 가정에서 말고, 회사에서 나왔다. 이제 내 위에는 나의 업무를 대신 책임져 줄 사람이 없다.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나는 직접 대면해 감사하다고 또는 죄송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됐다. 이제 모르는 번호도 허경영이 아니라면 다 받는다. 일이 잘못될 땐 머리카락이 모두 치솟는 것만 같이 두렵고, 업무 관련된 꿈을 꾸다 깬다.


독립을 했더니 난 하루 종일 돈 생각을 한다. 머릿속의 굉장히 많은 부분이 모두 돈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계속하면서 무엇이 이득인지 끊임없이 가늠하는 사람이 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얼마를 버는지, 얼마만큼의 가치를 인정받는 프로젝트인지, 나의 시간과 프로젝트의 가치는 과연 상응하는지 몇 번이고 잰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싶었나? 아마도 아니었을 텐데.



나는 예전에 분명 비싼 금액도 아닌데 직원들의 업무적인 니즈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마다 정작 작은 돈에 묶여 큰 것을 보지 못한다며 회사를 욕하곤 했는데, 지금의 나는 매월 나가는 비용이 신경 쓰여 복합기를 들이지 않고 프로그램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이것은 파트너들의 니즈에 대한 거절에 가깝다. 이게 대세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그렇다.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바라볼 때, 나는 이제 가격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이 첫 프로젝트여서 의미가 있었다거나, 클라이언트의 만족이 곧 나의 뿌듯함이 되었던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고 통장에 찍히는 금액이 곧 프로젝트의 의미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진짜 무엇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지 묻는 파트너들의 단어들 사이로 나의 칼 같은 부정들이 스며들 때 나는 때로 후회하고, 나의 면면들이 싫어진다. 친구들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러한 순간들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결국 실눈을 뜨면서 얼마냐고 묻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묻는다. 그런 내가 정말 별론 데도 아직까진 어쩔 수가 없다.



오늘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견적에 대해 하루 종일 고민해야 했다. 이것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어떤 물건이었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우리의 견적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투자할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가격이라, 소비자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예상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가격을 먼저 제시할 수밖에 없어서 이것이 이해 가능한 부분인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묻게 됐다. 증명할 길이 없어 두 눈 똑바로 뜨고 그만큼 우리가 일을 한다고, 잘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할지, 다시 나에게 묻는 것이다. 나라면 이 가격을 지불할 수 있을까.


해결되지 않는 고민에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빈도가 잦아졌다. 아, 돈 많이 벌고 싶다! 이건 마치 '쉬고 싶다' 또는 '놀고 싶다'와 같은 어투로 내뱉게 되는 탄식에 가깝다. 친구들과는 모여서 한 달에 얼마쯤을 벌어야 우리가 부자로 살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우리의 진짜 꿈이 처음부터 부자였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그것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아마도 우리는 자유롭고 싶은 것일 테다.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하다고 왜인지 모를 사과를 해야 하고, 누군가의 고갯짓 혹은 손짓에 반사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문장으로 치환하며 외치는 것이다. 아, 부자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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