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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Nov 29. 2021

작은 위로

<겨울 간식>

 누군가나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작정하고 찬찬히 살피면 장점 한두 개쯤은 발견할 수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단점 속에 파묻혀 있는 장점을 찾아내는 데에 꽤나 소질을 보이는 편으로, 딱히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나는 때때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그래, 전반적으로 좀 별로이긴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꽤 좋지-라는 결론으로 생각을 마무리하게 된다.


 나에게 전반적으로 별로인 것들 중 하나는 겨울이다. 겨울의 단점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속속들이 이야기할 수 있다. 추운 날씨와 짧아지는 해, 두꺼워지는 옷과 심해지는 수족냉증 같은 것들은 안 그래도 피곤한 몸을 더욱 둔하게 만든다. 단풍의 색이 거무죽죽해지고 목덜미가 움츠러들도록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나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이불속에서 나오기 어려워지고 늦잠을 자는 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어두컴컴한 아침 알람이 울릴 때 단박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은 꼼짝없이 지각하는 날이다. 그렇게 눈치 보이는 지각 출근길 위에서 겨울은 역시 별로인 계절이야, 하고 생각하는 거다.


 추운 날씨에 이래저래 불만이 많아 보이지만 좋아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눈이 내리는 새벽, 노천 온천탕, 뜨개질로 만든 것들이 제대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는 일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겨울에 제대로 맛이 나는 간식들이 있다. 시장이 반찬인 것처럼, 추위가 맛과 분위기를 더해 주는 간식들이다.


 겨울에는 현금을 좀처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구석에 꼼쳐놓았던 지폐와 동전들을 들고 다니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저기에 있었던가-싶었던 노점상들이 흰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달큰한 냄새가 빠른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붕어빵, 국화빵, 계란빵, 땅콩 과자, 호빵, 어묵, 호떡, 고구마…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충분히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역시 겨울을 기다려야 한다.


 초등학생 때에는 오빠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 해동검도를 다녔다. 학원은 오정동 오거리에 있었고 건물 앞엔 작은 주황 천막이, 그 안에는 붕어빵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한 개에 이백 원씩 하는 붕어빵을 팔았다. 우리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천 원을 내면 여덟 개든 열 개든 남은 붕어빵을 모두 봉투에 담아 건네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눅눅해진 붕어빵이었지만 그때에는 두 배나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붕어빵에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매년 겨울 방학에 할머니 댁에 가면 꼭 그해 가을에 주운 밤과 은행, 고구마를 잔뜩 구워 먹었다. 마당의 눈을 쓸거나 썰매를 타고 들어와서 먹는 뜨끈한 탄수화물의 맛은 단순히 달콤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대학교에 가서는 계란빵을 그렇게 자주 먹었다. 계란빵 하나를 사면 튀긴 쥐포를 두어 조각씩 줬고, 반들반들한 계란빵의 달콤한 겉 부분과 짭짤하고 담백한 계란을 씹고 있으면 금방 배가 찼다. 계란빵 하나에 어묵 국물을 종이컵 하나 가득 먹으면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됐다.



 이번 가을에는 할아버지가 밤을 잔뜩 보내 주신 바람에 밤 조림을 잔뜩 만들었다. 와인과 설탕으로 오래 졸여 만든 밤 조림은 모양도 멋지고 맛도 훌륭하다. 퇴근하고 괜스레 더 추운 저녁에는 밤 단지를 열어서 한두 개씩 꺼내 먹는다. 만들 때에는 고생스러웠지만 다음 겨울 간식도 이렇게 준비해 놓아야지 싶다.


 물론 간식을 먹으려고 추운 겨울을 기다리지는 않지만, 그런 따끈한 간식들은 추위에 종종거리는 나에게 마주치는 것만으로 작은 위로가, 기억할 만한 추억거리가 된다. 별로인 것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겨울의 간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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