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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29. 2021

호떡은 호호 불어먹어야 맛이지

<겨울 간식>

건대입구 2번 출구, 엔제리너스 앞은 내가 기억하기로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얼마나 사람이 많았냐면 가방을 꼭 쥐고 사람들을 피해 옆으로 걸어야 할 만큼 많았는데, 건대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약속이 모두 엔제리너스 앞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엔제리너스에서 건대 맛의 거리로 가는 길목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으려 빈틈없이 포장마차가 들어차 있었고, 갖가지 간식을 팔았다. 떡볶이부터 시작해서 닭꼬치, 과일 주스, 그리고 호떡까지.


그러니 겨울에 집에 가는 길이면 2번 출구를 통해서 내려왔다. 사람들을 비집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몇 개의 포장마차를 지나 호떡을 파는 집이 나올 때까지. 중간에 때로 떡볶이나 순대, 오뎅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유혹을 이겨낸 채 마지막 종착지는 호떡집이었다.



호떡은 몇 개 만들어져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역시 새로 막 구워진 것이 좋아서 방문할 때마다 사장님께 새로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사장님은 흔쾌히 반죽을 집어서 기름 위에 올렸다. 호떡 반죽은 빵을 만드는 반죽이나 전을 부치는 반죽과는 전혀 다른 점도를 가지고 있는데, 끈적끈적하기도 하면서 찰기와 탄성도 있어서 기름 위에서 구워지는 모습이 꽤 귀엽다.


호떡의 반죽이 기름 위에 올라가면 설탕과 견과류가 섞인 속을 한 숟갈 떠 반죽 위에 올렸고, 사장님은 뒤집개로 반죽을 살살 돌려가며 속을 반죽으로 모두 감쌌다. 집에서 호떡믹스를 가지고 직접 구워본 결과, 속을 알맞은 양으로 넣는 일은 굉장히 중요했는데 사장님은 감으로 퍼서 넣어도 적정량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속을 넣으려고 욕심을 부려서 뒤집개로 누르는 순간 반죽을 뚫고 속이 튀어나오곤 했다.


요새는 종이컵에 호떡을 담아주는 것 같았는데, 예전엔 무조건 삐뚤빼뚤 잘린 두꺼운 도화지였다. 막 구워진 것은 뜨거워서 한 장으론 안 되고, 두 세장 겹쳐서 겨우 집고 호호 불었다. 겉이 조금 식었다고 방심하고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잔뜩 달궈진 설탕물이 입 속을 타고 흘렀다. 호떡을 먹다가 입 속을 덴 것만 아마 열 번은 넘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신중하게, 차가운 겨울 날씨가 호떡을 조금이라도 빨리 식혀주기를 바라면서 포장마차 앞에서 동동거리며 호떡에 바람을 불어주었다. 호호.


호떡 하나를 열심히 불어가며 다 먹을 즈음이면, 왜인지 호떡을 먹으려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을 피해 포장마차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사장님은 호떡 반죽을 서둘러 기름 위에 연속해서 올렸다. 호떡 냄새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붙잡은 것이었을까.




얼마 전, 출장으로 대구를 방문했다. 일을 마치고 동대구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타려는데 역사 안에 있는 호떡집을 발견했다. 아마 지난 몇 달 동안 계속 그곳에 있었을 테지만 쌀쌀한 바람이 불자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분. 잠깐 고민하다, 결국 호떡집 안으로 들어섰다.


요새 호떡들은 종류가 많았다. 인절미부터 시작해서, 치즈가 들어간 호떡까지. 하지만 결국 오리지널을 이길 수 있는 메뉴는 없어서, 설탕가루가 든 호떡을 주문해 받아 들고 기차 시간 전까지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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