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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Nov 29. 2021

천 원의 행복, 겨울의 제철음식들

사랑하는 나의 <겨울 간식>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찬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고, 주머니 속으로 손을 더 깊게 찔러 넣는다. 한껏 움츠린 채 집으로 가는 발걸음에 속도를 더하다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코에 훅 들어오는 달달하고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를 풍기는,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겨울 간식들이다.



클래식은 영원하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골목 끝에 자리 잡고 있던 붕어빵 가게. 퇴근이 너무 늦어도 먹을 수 없고, 주머니에 현금이 없어도 먹을 수 없다. 이른 퇴근에 천 원짜리 지폐 몇 장도 챙겨갔지만, 사장님이 휴가를 가셨다면? 그날도 허탕을 치는 거다. 돈과 시간과 사장님의 스케줄까지, 삼위일체가 완벽해야 비로소 붕어빵을 먹을 수 있었다.


붕어빵 기계 앞에서도 한참을 고민한다. 붕어빵은 세 개에 천 원이니까 팥 붕어빵을 두 개 넣을지 슈크림 붕어빵을 두 개 넣을지 늘 고민이었다. 팥빵과 슈크림빵이 있다면 주저 않고 슈크림빵을 택했을 테지만, 붕어빵은 늘 팥 쪽이 조금 더 끌린다.


팥 붕어빵 두 개와 슈크림 붕어빵 하나를 들고 당당히 집으로 향한다. 천 원의 행복이 있다면 역시 붕어빵이다.

(붕어빵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건지 이제는 3개에 2천 원에 팔더라. 천 원의 행복은 이제 무리인 건가.)




추운 겨울날 제일 자극적인 향기

겨울만되면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 메뉴가 하나 추가된다. 바로 호떡이다. 지친 퇴근길, 멀리서부터 달달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하나 사서 갈까? 지하철에서 먹으면 너무 민폐겠지. 하지만 고민이 무색하게, 내 손엔 호떡이 들려있는 날들이 많았다. 


서서 호떡을 먹다 보면 손끝이 시려오고, 금세 코를 훌쩍이게 된다. 하지만 입안은 난리법석이다. 뜨거운 꿀이 입안으로 흘러오면 후후 뜨거운 입김을 내뱉는다. 쫀득쫀득한 호떡을 몇 입 더 먹고 나면 입술이 번들번들해진다.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물 때면 기름 냄새가 너무 느끼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당분간은 호떡이 안 먹고 싶을 것 같다가도, 퇴근길 번번이 내 발목을 잡는 건 느끼하고 달콤한 기름 냄새이다.




커다란 원통 대신 자그만 석쇠 위로

어린 시절, 토마스 기차를 닮은 몸통에 큰 연통을 가진 군고구마 기계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점점 보기가 힘들어지더니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춘 것 같다. 군고구마를 담고 있던 토마스 기차는 이제 편의점으로 거처를 옮긴 듯하다. 


겨울에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군고구마 냄새다. 달달한 고구마 향이 편의점 가득 퍼지면 노릇노릇 잘 구워진 군고구마가 저절로 떠오른다. 원래 고구마를 사러 온 게 아니었지만 괜히 고구마가 들어 있는 자그마한 석쇠를 한 번 바라본다. 


결국 나는 고구마 향기에 지고 만다. 하얀 종이봉투에 담긴 조그만 군고구마 하나. 군고구마를 카드로 사는 게 영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찰나다. 집에 가서 우유와 함께 고구마 한 입을 베어 물면 기술의 발전에 감탄하곤 한다. 편의점에서 군고구마를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겨울 간식들. 이제는 천 원의 행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몇 천 원에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행복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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