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물 루, 언스킬드 워커, 하지메 소라야마 등 16인. 19년 4월.
디뮤지엄. I draw: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오아물 루 Oamul Lu, 언스킬드 워커 Unskilled Worker, 하지메 소라야마 등 16인. 19년 4월.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19. 4. 22. 3:19 작성.
앱 이벤트로 한남동 디뮤지엄에 가게 되었다. 디뮤지엄은 몇 년 전 『Wanderland: 파리지앵의 산책』이라는 에르메스 전시에서 학을 뗀 이후로 거의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시 의도, 작품, 구성 등 대부분 훌륭한 요소들로 가득했지만 미어터지는 사람들로 2,30분 대기는 기본에다 10초에 한 번씩은 울려대는 셔터 소리에 제대로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존의 대림미술관도 단순 대중 어필용 전시를 많이 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거기서 파생된 디뮤지엄도 sns용 인기 영합주의 전시 위주라는 편견 아닌 편견으로 그동안 쉽게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작가 16인의 350여 점이나 되는 드로잉, 페인팅, 일러스트레이션, 조각 등 다채로운 작품들은 번잡스러움보다는 풍성한 느낌을 준다.
전시 제목에 충실하게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유화,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작업 등 나타내고 싶은 주제를 다양한 방식의 시각적 매체를 통해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공간은 #권경민 건축가를 중심으로 #씨오엠 (COM)과 #크래프트브로컴퍼니 (Craft Bro. Company)가 설계했다고 한다.
씨오엠 같은 경우 작년 말 #금호미술관 『NEW WAVE II: 디자인, 공공에 대한 생각』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공간 디자인팀이라 반가웠다. 또한 시각적인 효과 뿐 아니라 #탬버린즈 에서 제작한 향, #스페이스오디티 (Space Oddity)의 배경 음악 선정으로 후각과 청각을 더해 공감각적 즐거움을 준다.
전시는 엄유정 작가부터 시작해서 아래와 같이 두 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상 깊었던 작업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영국 작가로 48세에 정규 교육 없이 그림을 시작했고 본명은 Helen Downie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업계에 부상하였고 대림미술관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던 닉 나이트의 소개로 2014년 알렉산더 맥퀸의 디자인에 쓰인 초상화 작업을 하게 된다.
Girls in the Club. Marc Jacobs, Chalk, ink, pen, charcoal and oil pastel on Fabriano paper, 45.5 x 61 cm, 2016, Commissioned by Vogue Korea to celebrate its 20th anniversary. / Far away Boy, Chalk, ink, pen, charcoal and oil pastel on Fabriano paper, 76 x 56 cm, 2016 © 2019 Unskilled Worker
단순하고 원색적인 이미지 속에는 우울함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녹아있다. 인물들은 초점이 없고 묶여있는 동물, 사람 머리를 꿴 목걸이, 징그러울 만큼 길게 늘어진 손가락, 일그러진 표정의 동물 등 특이한 것들을 좋아하는 패션업계 사람들이 딱 좋아할 만한 오브제들로 가득하다.
The Tiger that lost its Stripes, Chalk pastel, ink, pen and charcoal on Fabriano paper, 100 x 70 cm, 2017 © 2019 Unskilled Worker
The Book of Wos, Chalk pastel, ink, pen and charcoal on Fabriano paper, 100 x 70 cm, 2018 © 2019 Unskilled Worker
The Book of Ill, Chalk pastel, ink, pen and charcoal on Fabriano paper, 140 x110 cm, 2018 © 2019 Unskilled Worker
(좌) Last Night She Dreamt That Somebody Loved Her, Chalk pastel, gouache and ink on Fabriano paper, 100 x70 cm, 2018, Commission for Soho House Art Collection
(우) An English Idyll 2, Chalk, ink, pen, charcoal and oil pastel on Fabriano paper, 76 X 56 cm, 2017 © 2019 Unskilled Worker
이런 기괴한 소재들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한 눈에 본다면 드는 생각은 '예쁘다'는 것. 하나 하나 개성이 넘치는 수많은 색들이 사용되었지만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어 난잡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또한 그림이 주는 분위기는 화려함 이면에 뒤의 쓸쓸함이나 어려움을 나타내는 듯 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2. #HajimeSorayama #하지메소라야마 #소라야마
1947년 생, 하지메 소라야마는 덕후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다. 40여 년 간 메탈 소재의 로봇 일러스트레이션과 조각 작업을 해왔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의 꿈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한 길만을 걸어온 열정이 대단하다. 처음엔 "저에겐 반짝이는 소재가 에로틱하고 섹시합니다."라는 전시장 내의 작가 인용을 보고 웃어 넘겼는데 공간을 둘러보며 감상을 하다보니 그 말의 의미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내 자신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 잡지의 핀업걸 사진에서 영향을 받은 그의 작업은 1970년 대 일본 산업에 컴퓨터화가 넓게 진행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며 광고 및 문화 업계에서 크게 성공한다. 작가는 '불쾌한 골짜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사실적인 로봇 일러스트레이션을 #슈퍼리얼리즘 (superrealism)이라고 명명하고 전시 설명에 따르면 '로봇의 실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메탈 신체에 반사되는 색으로 땅을 의미하는 갈색과 하늘을 의미하는 파란색을 선택한 것도 자연스러운 인식을 유도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 한다.
Untitled, Acrylic on illustration board, 51.5 x 36.4cm, 1982 / 1985, Courtesy of the artist and NANZUKA
작품들을 보면 고디바, 마릴린 먼로, 비너스, 인어, 모델 등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아이콘들을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40여 년 전부터 이런 선구자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려 왔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어떻게 보면 만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것들이 문화, 기술,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고 머지 않아 소라야마가 그린 로봇들이 실제로 말하고 움직일 날이 올 것이다.
공식 사이트에 가면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로봇 뿐 아니라 모델을 직접 그린 작품도 있으며 전시에 있는 것들보다 더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그림들이 많아 조금 놀랐다.
1999년 SONY사의 애완 로봇 AIBO의 초기 외관 디자인을 담당했고 그 후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에어로스미스(Aerosmith), 디즈니(Disney), 펩시(Pepsi), 허프(HUF), 준지(Juun.J), 카우스(Kaws), 엑스 라지(X-large) 등 여러 분야의 유명 브랜드 및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준지의 소라야마 콜라보레이션 가은 경우 작가를 알기 전부터 눈여겨 보았는데 이렇게 작품으로 만나게 되니 인상 깊었다.
어두운 조명의 바깥에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새하얀 방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은색 조형물, 원형으로 관객을 빙 둘러싸고 있는 그림들, 여러 개의 직선으로 나뉘어진 빛을 발하는 천장은 마치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미래에 와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작품과 아주 잘 어우러지는 씨오엠의 Scenography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 이미지의 주인공인 오아물 루는 1988년 생의 중국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따뜻함, 여유로움, 상쾌함, 편안함, 부드러움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벚꽃이 만개할 때쯤이어서 그랬는지, 주말이라 그랬는지, 홍보로 익숙해진 탓인지, 루브르의 모나리자 앞처럼 북적대는 사람들은 딱 그 반대말들을 생각나게 한다. 사진 좀 찍게 비켜달라던 여자 분은 디뮤지엄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과슈 또는 디지털 프린팅 기법을 많이 쓰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유화보다는 깊이나 무게감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특히 나무 그림에서는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잎들이 서로 뭉개진 표현들이 아쉬웠다. 하지만 파스텔톤의 안정적인 색감과 단순화된 이미지들은 평화롭고 쉬운 느낌을 준다.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경력을 갖고 있는 만큼 디지털 작업을 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웨이보(Weibo)에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 그림책 『별을 찾았어 I Found a Star』(2012)와 『오렌지색 여우 페리보 Feribo』(2015)를 쓰고 현재는 킨포크(Kinfolk), 샤넬(CHANEL), 루이비통(Louis Vuitton), 구글(google), 에어비앤비(Airbnb) 등 유수 기업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공간에서는 그림을 겹쳐서 전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떻게 보면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벼운 느낌으로 보는 작품인 만큼 신선한 배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과 잘 어우러지는 벽면의 색도 보기 좋았다.
1. Sunset, Gouache on Paper, 21 x 29.3cm, 2018
2. Ice lake, Pigment Print on Paper, 42 x 30.1cm, 2014
3. Chilean desert, Pigment Print on Paper, 220 x 161cm, 2015
4. Green house, Pigment Print on Paper, 42 x 30.1cm, 2014
On the way to the waterfall, Pigment Print on Paper, 42 x 29.6cm, 2014 / March, Digital Painting, 200 x 157cm, 2018
4. 나머지
이번 전시를 여는 작가는 #엄유정 이다. 설명에 따르면 '주변 환경에서 마주친 인상 깊은 장면이나 대상을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작업을 할 때 인물이나 풍경, 사물을 구분 짓지 않고 주제에 평등하게 접근하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대상을 이해하고 수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이나 삽화 작업도 활발히 하다보니 그림들이 간단하고 날렵하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들은 관조적인 느낌이 물씬하다. 어떤 것들은 팀 아이텔의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번째는 #피에르르탕. 프랑스인 어머니와 베트남 화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예술 작품 등을 수집하고 삽화 작업을 해온 작가이다.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선을 긋는 것부터 연습하는 사람이 그린 느낌이다. 명암도 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오로지 선을 겹침으로써 나타낸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업 또한 단순하고 쉽게 다가온다. 특히 가구에 직접 펜을 댄 작업물은 장난기가 가득하다. 아치형으로 된 경계벽은 만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벽이 조금 더 높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센스있는 공간 구성이 보기 좋았다.
뉴요커(The New Yorker),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트래블 & 레저(Travel & Leisure), 타임(Time), 롤링 스톤(Rolling Stone), 보그(Vogue),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Condé Nast Traveler) 등의 잡지와 샤넬(CHANEL), 까르띠에(Cartier), 랑방(Lanvin), 롤렉스(Rolex) 등 유수 브랜드와의 협업을 하고 있는 활발한 작가라고 한다.
Untitled, Ink and Gouache on Paper, Printed 2019, 60 x 44cm,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Tristan Hoare / Le buste, Paint and Ink on Wood, 188 x 34cm, 2018, Courtesy of Edouard Merino
Paire de Fauteuils, Epoque Louis XVI, 62 x 91 x 58cm, 2018 / La table ronde, Paint and Ink on Wood, 78 x 97cm, 2018, Courtesy of Edouard Merino
Untitled, Ink and Gouache on Paper, Printed 2019, 60 x 42.4cm / 60 x 44.2cm,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Tristan Hoare
소라야마 전시실 앞, #크리스텔로데이아 의 작업에는 자아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 같은 그림, 식재료를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 맥락 없이는 이해가 어려운 그림 등이 있었는데 크기도 아기자기 하고 내용도 흥미로워 작품 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시선을 끌었다. 설명에 따르면 '한 여성을 둘러싼 주변이 우주만큼 커다란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Blind Love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소제목은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의 모호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Bon appétit!, Pencil and Digital Colorization, 25 x 24cm, 2018 / Objet hybride, Pencil and Digital Colorization, 22 x 20cm, 2018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는 #람한 작가의 디지털 페인팅 작품들이 늘어서 있다. 벽면, 천장까지 배치되어 마치 그림으로 재탄생한 네온사인들을 보는 것 같다. 설명에 '사이키델릭'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Cracked, Digital Painting, 139 x 201cm, 2017 / Happy fish (Inspired by Justin Vallesteros), Digital Painting, 94 x 90cm, 2018
작가 홈페이지에 가면 좀 더 매력적인 작품들이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이후로 이어지는 #케이티스콧 Katie Scott, #페이투굿 Faye Toogood, #해티스튜어트 Hattie Stewart, #무나씨 Moonassi, #신모래 Shin Morae, #쥘리에트비네 Juliette Binet의 작품들도 개성과 매력이 있었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정말 디지털의 시류를 막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기존의 아날로그적 방식이 주는 깊이나 풍부함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감동을 주는 디지털 프린팅 작품들이 많았다. 언제까지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야 하나 고민스럽다.
한 가지 아쉬움 아닌 아쉬움은 작품이 너무 많아 뒤로 갈 수록 집중력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전시에 가기 전에 미리 잘 찾아 보고 선택적으로 관람하는 것도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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