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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cent Dec 09. 2020

페로탕. 기념비에 대한 부정. 19년 4월.

실리아헴 튼, 박가희 등 12인.

PERROTIN 페로탕. No Patience for Monuments 기념비에 대한 부정. Celia HEMPTON 실리아 헴튼, 박가희 등 12인. 19년 4월.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19. 5. 5. 15:12 작성                                                                                                                                                                                                                                        

호아드 갤러리에서 이지은 작가의 세번째 전시 오프닝 행사가 있어 사간동에 들렀다. 주변에 좋은 전시가 있나 찾아보던 차에 #페로탕 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NO PATIENCE FOR MONUMENTS 기념비에 대한 부정』을 보게 되었다.


이름이 생소해서 물어보니 오픈한 지 3년이나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그 주변 갤러리를 어느 정도 갔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가지 못한 진주 같은 곳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이런 공간들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동시에 개인적으로 한산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하다.


파리, 뉴욕, 홍콩에 이어 서울, 그리고 도쿄, 상하이까지 각국 주요 도시에서 유수 작품들을 전시한다. 현재 하고 있는 SOL LEWITT(상하이)나 김종학 작가(파리)의 전시에도 눈이 갔다.


팔판동은 경복궁을 왼쪽에 두고 사간동, 소격동을 지나 삼청동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는데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가 매력이다.



이번 전시는 Ursula K. Le Guin 어슐러 르 귄의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글은 엘리자베스 피셔의 Carrier Bag Theory of human evolution을 오마주 내지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류의 역사에 발전을 가져온 것은 무기가 아닌 용기(容器)라는 것이다. 무기로 사냥을 하고 상대를 정복시켜도 쟁취한 것을 보관할 곳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르 귄은 이 이론을 fiction에 적용시킨다. ('소설의 쇼핑백 이론'이라는 번역은 참 별로인 것 같다.)


Ursula K. Le Guin


르 귄에 따르면 구시대에 생존에 있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사냥이라는 것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대부분 잎, 열매, 곡식 등의 채집으로 삶을 영위했고 노동 시간 자체도 주 15시간 정도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사냥이었다. 중요한 비중이 아니더라도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이야기 보다는 피를 묻혀가며 거대한 맘모스를 무찌르는 것이 훨씬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영웅물로 이어지게 되고 르 귄은 그게 아주 불만인 듯 하다.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어조로 계속해서 영웅 중심의 서사에 대하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채집, 아이, 노래, 엄마, 용기(容器)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자신도 그런 것 보다는 과격하고 역동적인 이야기가 대중에게 훨씬 흥미롭다는 언급을 했다. 이것은 영웅 외 다른 것들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사람들은 마블 시리즈를 홍상수 감독의 영화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많이 찾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작품성이 훨씬 떨어져서 일까, 관람 등급 때문일까, 아니면 천만 국민이 남성우월주의자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어리숙하고 찌질하고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주인공이 주는 재미가 분명 있지만 대중들은 그런 모습 보다는 우월한 힘을 갖고 적을 무찌르는 시원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르 귄이 말하는 Carrier Bag에 담아갈 약자, 바보, 패배자는 특히 fiction에서는 더욱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르 귄의 ‘비판’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지 ‘주장’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공감한다. 역사, 예술, 문화는 남성 위주일 필요도 없고 여성 위주일 필요도 없고 영웅이든 약자든 무엇이든 간에 특정한 것이 위주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것에 대한 기념비 중심적 경향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이번 전시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그림은 Celia HEMPTON 실리아 헴튼의 Ben. 미술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많은 화가들이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해왔다. 굳이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같은 노골적인 작품을 예로 들지 않아도 특히 누드에 있어서 대부분의 그림의 모델은 여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남성의 성기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것은 신선함을 안겨준다. 남자로서 이 그림을 오랫동안 감상하고 즐기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무심하게 그린듯한 것도 매력적이다. 그동안 수많은 여성 모델의 누드를 볼 때 여자들이 느꼈던 감정이 이랬을까.


Ceila HEMPTON, Ben, Oil on Wood Panel, 35 x 30 cm, 2018


박가희 작가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면 사이의 선명한 구분과 여러 색들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산뜻한 느낌이 들고 채도가 높은 색들이 생기를 준다. 하지만 그림 속의 오브제들은 기묘하다. 팔이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 엎질러진 잔, 귀신 같은 형체는 예쁜 꽃과 과일과 어우러져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작품은 낭만적인 장면의 이상이 무너진 모습을 묘사하여, 그 속에 담긴 성적 행위는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배경과는 사뭇 대조된다.’ 조금 더 전시의 주제와 어떤 점에서 부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림은 흥미로운데 작가 정보나 과거 작품 등을 찾기 어려워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든다.


박가희, Still Life with Flowers, Fish and Hermit Crab, Oil on Canvas, 81.3 x 71.1 cm, 2018


Feast Night, Oil on Canvas, 86.4 x 104.1 cm, 2018
Shallow Night / Chateau de Plaisir, Oil on Canvas, 104.1 x 86.4 cm / 121.9 x 101.6 cm, 2018


Julie Curtiss 줄리 커티스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잘라서 보관해놓은) 땋은 머리를 보고 자칭 '메두사 컴플렉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머리는 희끗해져갔지만 그 머리는 갈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그리는 것이 본인에게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대상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는데 보는 이로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기분을 가져다 주는 것 같다.


Julie CURTISS, Cleave (VIshnu), Gouache on Paper, 43.2 x 35.6 cm, 2019


주로 일본의 그래픽 아트, 르네 마그리트, 니콜 아이젠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기묘하고 이상한 소재와 그것을 표현하는 징그러운 모양의 머리카락을 통해 현실과 초현실의 대비를 이끌어내고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이미지들을 도출한다. 전시에는 없지만 작가 홈페이지에서 아래와 같은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성(性)적인 것 말고도 음식, 또는 그 두 가지 주제가 합쳐진 그림들도 많은데 인간의 원초적 욕구, 나아가 탐욕, 그것이 주는 불쾌감 등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https://www.juliecurtiss.com


(좌) Feast, Acrylic and Oil on Canvas, 18 x 24 in

(우) The nest, Gouache and Acrylic Wash on Paper, 9 x 12 in, 2018


(좌) The guest, Acrylic, Vinyl and Oil on canvas, 40 x 30 in

(우) In Link, Gouache and Acrylic Wash on Paper, 9 x 12 in, 2018


(좌) No place like home, Acrylic and Oil on Panel, 24 x 36 in

(우) Appetizer, Gouache on Paper, 12 x 9 in, 2017

(좌) D’apres l’origine du monde, Acrylic and Oil on Canvas, 23 x 28 in

(우) The test, Gouache on Paper, 12 x 16 in, 2016



아래는 Jansson Stegner 얀센 스테그너의 그림인데 '여체를 묘사함에 있어 기념비적 접근 방식을 동원'하여 '전통적인 초상화 자으 속에서 여체에 부여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근육질과 미가 조화를 이루며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스테그너의 작품은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좁은 잣대에 도전장을 내민다.'고 하는데 도전장을 내민 것치고는 그림 속 모델은 잘록한 허리, 튼튼한 허벅지, 볼록한 가슴 등 기존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Ridley Howard 리들리 하워드의 작품도 '행위자와 대상자의 전통적인 역할, 남성과 여성의 특징적인 성적 행위, 각 성별에 기대되는 태도 등을 전환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왼쪽 같은 경우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는 행위는 전혀 업는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모습이고 오른쪽의 경우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역할이 반대였다면 예술이 아닌 포르노그라피로 취급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윗층으로 올라가면 전시가 이어지는데 작은 공간이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고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과도 잘 어우러진다. 특히 얇은 나무살로 이루어진 문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작품인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그밖에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전시가 목적을 달성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존과 무작정 다른 것만 갖다 놓는다고 그것이 남성 위주의 문화를 깨부수고 반기(叛旗)를 드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어떤 작품들은 남성 중심으로 여성이 소비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는듯 하면서도 오히려 여성의 신체를 또다른 방식으로 상품화 한 것 같다는 느낌도 주었다.


또한 차분한 톤으로 이성적인 비판을 하기 보다는 감성적으로 접근하여 아이들 장난처럼 가볍게 느껴지고 마치 반기가 아니라 귀여운 반항 정도에 지나지 않는 듯한 그림도 있었다. 하지만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예술의 의미 중 하나라고 볼 때 충분히 의미 있고 흥미로운 전시였다.


나머지 작가들의 작품과 설명, 전시 전경은 아래 공식 사이트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perrotin.com


https://www.perrotin.com/exhibitions/gahee_park-no-patience-for-monuments/6834


https://static.perrotin.com/presse_expo/press_release_6834_1.pdf?v=1555429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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