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6월
2018년 6월 17일 instagram(bincent.kim) 작성
오후까지 밍기적대다 지난번 가지 못한 서울관에 갔다.
느지막이 도착해서 첫 전시장을 둘러볼 무렵 도슨트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잠깐 고민하다 설명을 듣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보통 갤러리든 미술관이든 작품을 보러 가면 설명을 잘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그림과 소통하는 것이 방해 받는다는 생각도 있고 특히나 한가람미술관 같은 곳에서 우르르 다니면서 한 공간을 점령하는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전시 소개 정도만 보고 관람, 감상을 다 끝내고 난 후 천천히 자세한 설명이나 배경을 찾아보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은 대중적이고 알아듣기 쉬운 설명을 들으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머리를 조금 비우고 졸졸 따라다니며 보고 싶을 때도 있고 도슨트의 소소한 농담에 옆 사람들과 함께 웃거나 교감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번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다소 서두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설명을 다 들었을 무렵 지인을 마주쳤다. 그런 적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전시를 보다 아는 사람을 맞닥뜨리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여기가 목적이 아니라 근처 다른 갤러리를 가기 전에 온 것이라고 한다.
설명이 끝난 뒤 혼자 찬찬히 둘러보고 회사에 들를 생각이었는데 다른 갤러리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동했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기분 좋게 계획을 흐트러뜨리고, 서울관 전시는 다시 한번 뒤로 미루고 호아드로 향했다.
서론이 참 길었는데 사실 이번 포스팅은 국현 서울관이 아닌 호아드의 Le grand bleu에 대한 것이다.
이 동네 좋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서 막상 이 동네 한 가운데 있는 곳을 처음 가본다는 것이 좀 부끄러웠다. 카페, 비스트로, 갤러리가 각각의 작은 공간에 함께 있는 곳인데 많이 북적북적해진 동네 분위기에 비해 골목에 있어서인지 한산하고 고즈넉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2층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바깥 풍경은 옛 건물들과 나무들 덕에 꽤나 운치 있다.
작가는 “내가 자란 곳에는 언제나 바다와 산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 작품들을 보아도 파란색과 초록색 위주의 그림들이 많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가 자란 곳에는 언제나 건물과 도로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작가처럼 또다른 회색,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회색]들을 기대”하지도 않고 “내가 찾던 상상 속의 회색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자라온 환경의 색이라면 회색을 포함한 무채색이 많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색들이 주는 차분함, 고요함, 이성적인 판단, 쓸쓸함, 단정함과 같은 느낌들이 좋다. 다만 작가처럼 더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다른 색들의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느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인지 김종학 작가의 작품들처럼 원색을 많이 쓴 그림에서 오히려 매력을 느낀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목에 걸맞게 푸른색에 푹 빠질 수 있었다. 학생 때 들었던 색채조형 수업이 스쳤다. 여러 색으로 이런 저런 장난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림 속에 작게 있는 사람(들)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에 그림에 가벼움을 더하는가 하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오점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소로 다가왔다.
“비극적 경험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다.”라는 로스코의 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 노트도 인상 깊었다. 나는 저 문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직접 작품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저런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가 노트를 보기 전임에도 그림에서 로스코의 느낌이 스쳤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림 자체로만 보았을 때 지난달 필 갤러리의 Peaceful Garden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또 다른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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