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웅, 유영국, 이중섭, 김환기, 이응노 등 70여 명. 18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 구본웅, 유영국, 이중섭, 김환기, 이응노, 이마동, 김주경, 임용련, 정영렬 등 70여 명. 18년 6월.
브런치는 왜 제목에 글자수 제한을 두었을까. 답답하다.
2018년 7월 15일 instagram(bincent.kim) 작성
추억. 나에게 이 전시는 이 한 단어로 기억된다.⠀⠀⠀⠀⠀⠀⠀⠀⠀⠀⠀⠀⠀⠀⠀⠀
그림을 볼 때 나의 상황에 비추어, 나를 기준으로 감상하는 편인데 이번엔 전시 제목부터 와 닿았다. 덕수궁관은 말 그대로 내가 사랑하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덕수궁은 조선의 아름다움이 깃든 구조물과 석조전과 같은 근대 건축물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잘 어우러지고 그런 공간을 SFC, 서울신문, 시청 별관 등 현대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어 여러 시대의 공존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또한 이런 저런 좋은 추억이 많이 서려있는 곳이다. 한참 미술에 미쳐 있을 때 수업 과제로 석조전을 그리러 방문하기도 했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기도 했고 퇴근 후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씩 들르기도 하는, 그래서 정이 많이 가는 곳이다.
여기서는 유독 ‘소장품 특별전’, ‘XX주년 기획전’ 등 근대 미술 컬렉션을 테마로 전시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 때를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정이 가는 작품들이 많다. 특히 기획전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전 봤던 작품들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러다 보면 처음 보았을 때 몰랐던 매력을 새롭게 알게 될 때도 있다.
이번 전시가 여느 ‘특별전’들과 다른 점은 내가 사랑하는 덕수궁 속의 덕수궁관, 석조전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지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필두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자세한 계획, 도면들을 보며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 행위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한 때 건축에도 관심이 있어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스쳤지만 항상 여러 분야에 관심만 갖고 깊게 파고 들어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이 가득했다.
다음 전시실부터는 씁쓸함 대신 ‘근대의 걸작’이라는 부제에 맞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가득했다. 특히 그 시대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는 <친구의 초상(구본웅)>, <남자(이마동)> 등은 정말 반가웠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유영국, 이응노 작가들의 그림은 여러 번 보아도 설레는, 더 말할 것도 없는 명작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눈에 익지 않는 그림들, 작가들이 있다는 것은 갈 길이 멀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눈에 익지 않았던 작품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적멸 79-11(정영렬)>과 <금색운의 교차(한묵)> 두 가지였다. 첫번째의 경우 묘법 시리즈(박서보), 무제 시리즈(정상화)에서 볼 수 있는 단색 추상화가 자연스레 떠올랐지만 그 입체감에 있어 깜짝 놀랐다. 골판지를 잘라 붙인 듯 튀어 나와 있는 착각을 일으켜 여러 각도에서 보고 캡션에서 재료를 확인할 정도였다. 찾아보니 60년대 앵포르멜, 70년대 단색화 흐름을 주도한 작가들 중 하나라고 한다.
한묵 작가도 70년대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거장이라는 것을 찾아보고 조금 머쓱해졌다. 갈 길이 멀긴 먼가보다. 어쨌든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가만 보고 있으면 교차하는 두 개의 나선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다. 1969년 아폴로 달착륙 소식을 전해 듣고 3년간 붓을 들지 못하다가 그 이후 4차원의 기하학적 추상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투박하지만 섬세하고 지루하지만 재미있는 도형들의 조화를 보고 있으면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덕수궁관 건축을 주제로 한 번쩍거리는 미디어 아트 홀을 마지막으로 석조전 반대 편에서 관람을 마쳤다. 그쪽으로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금색운의 교차>에서 미디어 아트 홀을 지나 건물 반대편으로 나와, 들어갈 땐 밝았지만 이내 깜깜해진 하늘을 보니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이번 전시는 과거로의 행복한 여행을 하는 듯한 경험을 주었고 추억은 미화 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조금 과장하면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 펜더가 된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